빛 뒤의 밤

나를 찾아가는 그림책 여행 3

by 행복한독서

열정, 사랑, 친절, 배려, 선의, 신뢰. 우리는 여러 선한 가치를 내재화하며 성장하려 애쓴다. 내 빛으로 세상을 빛나게 하려는 욕망 덕에 세상은 조금 더 환하고 근사해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커지는 것은 빛뿐만이 아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는 과학적 진실은, 인간의 심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에게는 올바른 자질만 있는 게 아니다. 어른으로 인정받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억압해둔 기질들이 내면에 함께 자리한다. 질투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폭발하고픈 마음, 선을 넘고 싶은 마음,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들은 잘못되었다며, 누르고 숨겨두면 완벽하게 선하고 부드러운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늑대가 나는 날』(한림출판사)을 읽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어두운 감정들이 스멀스멀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그림책은 한 아이의 덤덤한 독백으로 전개된다. 오늘 바람이 센 것은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기 때문이고, 천둥이 치는 것은 고릴라가 가슴을 치기 때문이란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변화를 동물에 빗대어 말하는 아이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런데 다른 눈으로 보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듯 마음이 요동치는 것은 내 안의 짐승들이 날뛰기 때문이다. 잠들어 그림자가 잠잠해질 때야 비로소 마음의 요동도 잦아든다.


늑대가나타나는날.jpg ⓒ한림출판사(『늑대가 나는 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은 내 마음의 평온을 깨뜨리는 야성적인 감정에 비유할 수 있다. 이유도 모르게 불쑥 올라와 나를 온통 휘젓는 통제 불가능의 감정. 사람마다 그림자의 정체는 모두 다르겠으나, 내 그림자 중 강력한 건 시기와 질투다. 비슷한 분야에서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럴 때는 목구멍에서 새가 부리로 콕콕 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림책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억울한 마음이 들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불쑥 튀어나온다는 분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면 고릴라처럼 가슴을 친다는 분도 있다. 그렇게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며 불쑥 튀어나오는 마음은 내 그림자일 공산이 크다.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두었지만, 일정한 계기만 있으면 나를 제멋대로 조종하는 악마 같은 마음.


그러나 그림자가 꼭 ‘악마’인 건 아니다. 실제 사람에게 그림자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그건 유령이나 귀신이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밤, 어둠, 그림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호텐스와 그림자』(다산기획)는 결말이 다소 직설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아름다운 그림과 깊은 생각거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호텐스는 크고 어둡고 섬뜩한 자신의 그림자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림자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림자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랜 노력 끝에 결국 그림자를 떼어낸 호텐스는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깊은 숲에서 홀로 강도를 만났을 때, 호텐스를 구해준 건 이리저리 몸을 변형할 수 있는 유연한 그림자였다.

호텐스와그림자.jpg ⓒ다산기획(『호텐스와 그림자』)


『그림자가 따라와요』(마루벌)는 유사한 이야기를 보다 천진하게 전개한다. 연못에 비친 그림자 때문에 물고기들이 자꾸 도망가자, 달곰이는 그림자를 버리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못질을 하고 절벽에 올라가고 땅에 묻어버려도 그림자는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달곰이는 그림자와 타협하게 된다. “물고기를 한 마리 잡게 해주면 너도 한 마리 잡게 해줄게. 좋으면 고개를 이렇게 끄덕끄덕해.” 달곰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림자도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은 무척 사랑스러워 그만 웃음이 나고 만다. 결국 달곰이가 물고기를 잡자 그림자도 물고기를 잡는다. 그림자를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원하던 바를 달성한 것이다.


그림자를 무조건 악하고 음습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내게 붙어있는 그림자를 돌아보기보다는 없애거나 감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억눌러놓은 마음에는 오히려 우리를 새롭게 추동하는 힘이 있다. 질투하는 마음은 잘 다듬으면 나를 격려하는 추진력이 된다. 폭발하고 싶은 마음을 잘 다듬으면 도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내게는 그런 어두운 마음이 없다고, 저 사람에게만 있다고 비난하기에 급급하면 그림자에 숨겨진 힘을 발견할 수가 없다. 세상의 위대한 사람은 오직 빛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모두 알지만 둘의 균형을 맞출 줄 아는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의 과제는 그림자가 너무 커지기 전에 돌봐주고 안아주는 것이다. 『오리건의 여행』(미래아이)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오래 억눌러온 그림자와 화해하는 여정으로 읽을 수도 있다. 광대 듀크가 서커스단에 갇혀 살며 억눌러온 감정들이, 거대한 곰 오리건으로 형상화된 건 아닐까. 다행히 듀크는 “숲에 데려다 달라”는 그림자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먼먼 오리건으로 걸어간다. 오리건을 제자리에 돌려주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듀크는 광대의 빨간 코를 떼고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다. 다시 떠나는 길 위에서 그림자는 또다시 길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듀크는 알고 있다. 그림자와 어떻게 사이좋게 지내야 할지. 때론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걷고, 거친 곳에서 웅크리며 자고, 때론 훌쩍 떠나버리면서, 그림자가 소리 내어 울기 전 보듬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리라. 숨겨둔 내 욕망을 그림책에서 마주하며 어쩔 줄을 모를 때, 바로 그때가 우리의 그림자를 가만히 안아줄 때다. 나는 빛의 조각이듯 또한 그림자의 조각이라고 중얼거리며.


황유진_작가, 『어른의 그림책』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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