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해녀입니다

내 숨만큼, 바다가 주는 만큼

by 행복한독서
“호오이~ 호오이~”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숨비소리는 우리 엄마가 살아 있다는 소리예요. 인간의 욕심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 바다밭에서 딱 자기 숨만큼, 바다가 주는 만큼만 머물기로 한 약속. 그 약속 지키며 바다로 향하는 우리 엄마는 해녀입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고희영 글 / 에바 알머슨 그림 / 안현모 번역 / 48쪽 / 13,500원 / 난다



어린 시절 저는 늘 제주섬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눈에 걸리는 수평선이 답답했고 그 너머의 세상이 그리웠습니다. 호시탐탐 떠날 궁리를 하다가 결국 고향을 떠나 대구, 서울 그리고 지금은 중국 베이징에서 살고 있지요.

어느 날, 인생에게 혼쭐난 적이 있어요. 몸과 정신이 망가져서 더는 한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순간.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퍼져 갓길에서 견인차를 기다리는 폐차가 된 기분이었지요. 그래요. 고백할게요. 저는 참 욕심쟁이였어요.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고 더 먼저, 더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 치며 보낸 세월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숨은 더 가빠졌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 바다가,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몹시 듣고 싶었어요.

‘호오이~ 호오이~’ 살아있다는 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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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고향 바다로 갔습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 해녀들을 눈에 담았어요. 그분들은 늘 고향 바다에 있었지만, 그날 처음 제 마음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온 것이지요. 그로부터 7년 동안 베이징과 제주도·우도를 넘나들며 해녀들을 촬영했고, 영화 「물숨」(2016)이 만들어졌어요.


영화를 개봉할 즈음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을 만났어요. 그녀는 상하이 한 호텔에서 무심코 집어든 잡지를 통해 해녀를 처음 보았대요. 그리고 외쳤대요.

“난 이 여인들을 만나러 가야겠어!”

그녀는 「물숨」 개봉 소식을 듣고, 한 일간지에서 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어요. 우연히 그 기사를 본 저는 스페인에 있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지요. 에바가 제 메일을 받고 ‘내 인생에서 무언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려 하는구나’ 하고 전율했대요. 이런 걸 운명적 만남이라고 하나 봐요.


제가 먼저 해녀 동화를 만들어보자고 손을 내밀었어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에바가 한국을 방문했고, 저는 에바를 데리고 「물숨」의 무대인 제주도 동쪽의 작은 섬 우도로 들어갔어요. 에바는 물질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갯바위에 앉아 스케치하고, 저는 글을 골랐어요. 저녁이면 해녀들이 바다에서 돌아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물숨」의 주인공인 해녀가 자신이 쓰던 ‘큰눈이(물안경)’를 에바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했어요. 그 큰눈이와 소라 껍질을 스페인의 작업대에 올려놓고 그림을 그렸대요.


『엄마는 해녀입니다』 는 매일같이 무시무시한 바다로 나가는 엄마와 할머니를 기다리는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바닷속에서 숨 참기는 기본이고 물고기며 전복, 미역, 문어 등등을 잘도 건져 올리는 엄마. 해녀 할머니와 해녀 엄마를 늘 바라보고 기다리는 아이는 어쩌면 해녀를 알고 해녀를 본 적도 있지만 해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해녀들은 바다를 ‘바다밭’이라고 부릅니다. 바다를 저마다의 꽃밭처럼 아름답게 가꿉니다. 그 꽃밭에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옵니다. 해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이유도 오래전부터 내려온 바다와의 약속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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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사이에 둔 삼대 해녀 가족의 정서적인 연결은 물론 글의 리듬까지 살려서 그린 에바의 그림을 보고 탄성이 나왔어요. 왜 그녀의 그림을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좋아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의 뒤편에는 「물숨」의 영어 더빙을 맡았던 안현모 전 SBS 기자가 의성어·의태어뿐 아니라 한국만의 특별한 정서 전달을 위해 섬세하게 작업한 영어 번역본도 수록돼 있어요.


사는 일이 힘들고 숨찹니다. 그럴 때마다 해녀들의 바다를 봅니다. 동화 속 해녀 할머니는 오늘도 바다로 나가는 해녀 엄마에게 말합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고희영 선생님은 잠잘 시간, 밥 먹을 시간 없이 숨 가쁜 방송 작가 일을 하다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어요. 영화 만드는 일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만큼 멀고 힘들지만, 아직도 걸어서 별을 향해 가는 중이에요. 그렇게 만든 영화로 「물숨」과 「시소」, 밤잠 못 자고 만들었던 방송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어요.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선생님의 첫 그림책이에요.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7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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