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그림책 여행 4
우리는 빛의 조각이면서 그림자의 조각이다. 양극단인 명과 암이 우리 ‘안’에 다 있음을 살피다 보면,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도 서로 대극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을 거고, 겨울은 봄으로 이어지고, 슬픔과 기쁨은 번갈아 온다. 전혀 다른 것이 한 쌍이라는 믿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갑갑함이 밀려올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준다. ‘나를 가로막는 이 벽과 벽을 넘게 하는 꿈도 사실은 하나의 세트야. 이 벽을 넘는 힘이 반드시 내 안에 있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며 하루치 위안을 구해보는 것이다.
2019년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최종 후보작까지 올랐던 『울타리 너머』(북극곰)에는 아기 돼지 소소와 소년 안다가 등장한다. 소소의 모든 것을 잘 안다고 으스대는 안다는 소소의 일상 하나하나를 통제하고 간섭한다. 큰 반발 없이 안다의 말을 수용해오던 소소는, 산책길에서 야생 멧돼지 산들을 만난다.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두 발로 걸으며 울타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소소와 달리, 산들은 맨몸으로 어디든 거침없이 가는 자유로운 네 발의 존재이다. 이후 소소의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자꾸만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게 되는 소소와 소소를 구속하는 안다, 둘의 관계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랑을 측정하는 척도로 ‘상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를 꼽곤 한다. 사랑에 빠지면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어울리는지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 일반적으로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은 두말할 것 없는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 노력이 ‘너를 속속들이 다 안다’는 오만에 다다른다면, 앎은 마침내 높고 견고한 벽이 되어 사랑을 가로막는다. 서로를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두고 축소시키는 울타리만이 남는다.
나를 가로막는 벽이 『울타리 너머』처럼 항상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다. 가장 강력한 부정적 목소리는 종종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넌 안 돼.” 단호한 부정의 말은 오히려 꺾어버리기 쉽다. “힘들 수도 있는데 괜찮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네가 다칠 수도 있어.” 나를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나를 주저앉히려는 교묘한 말들이야말로 더 극복하기 어렵다.
『아저씨 우산』(비룡소)의 아저씨는 자신의 검은 장우산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우산을 비에 맞지 않게 하려는 기묘한 집착 때문에, 아저씨는 우산을 펴지도 않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집 밖을 나가지도 않는다. 사실 이 책에서 아저씨가 우산을 펴지 않던 이유는 명확지 않다. 자신이 아끼는 것을 세상에 내어놓기 싫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우산을 편 이후 발생할 변화가 두려웠을까. 그렇게 본다면 아저씨는 자신다움을 가로막는 안다일 수도, 또한 변화를 꿈꾸지 못하던 소소일 수도 있다.
아저씨가 우산을 펴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빗소리를 노래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비가 내리면 또롱또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참방.” 정말 그럴지 궁금한 마음은 아저씨의 벽을 문으로 만들 열쇠가 되어준다. 우산을 펴지 않으면 검은 우산은 그대로 아름답겠지만 저 빗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는 없겠지. 우산을 들고 빗속으로 들어간다면 우산은 계속 젖고 닳아가겠지만 또롱또롱 참방참방 빗소리를 경험해볼 수 있겠지. 아저씨가 마침내 검은 장우산이 촤르륵 화면 가득 펼쳐지는 순간, 우리 안에 접어두고 구겨두었던 두려움도 활짝 펼쳐지는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멋들어지게 비에 젖은 우산은 이제 매번 흠뻑 젖으며 아저씨에게 빗소리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살면서 외부와 내부에서 울리는 벽의 목소리는 수없이 반복되며 온다. 『조랑말과 나』(이야기꽃)의 소년은 조랑말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가다 보면 매번 강도와 외계인, 악어와 해골 같은 이상한 녀석이 나타난다. 둘의 길을 가로막고는 조랑말을 망가뜨린다. 매번 나를 좌절시키는 이 녀석들은 대체 누구일까. 가까운 이의 죽음, 폭력, 이혼, 경제적 어려움 같은 상황적 어려움일 수도 있다. 남에게서 듣는 비난과 조롱 같은 말의 칼날일 수도 있다. 하지 마, 안 돼, 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어려움은 끊이지 않는다. 한 녀석이 겨우 사라졌다 싶으면 다음 녀석이 또 다가와 내 조랑말을 망가뜨린다.
처음 길을 떠날 때 멀끔했던 조랑말은 찢어지고 그을리고 흉터투성이로 변한다. 그래도 소년은 굴하지 않고 조랑말을 치료해 다시 길을 떠난다. 길 위에서 소년의 얼굴에도 반창고가 붙여진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마침내는 서로 손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조랑말은 꿈일까, 희망일까, 자존감일까. 그 무엇이든 조랑말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너머’를 꿈꿀 때 결국 벽을 넘어가게 된다. 울타리 너머에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 우산을 폈을 때 들릴 빗소리에 대한 기대감, 언젠가 닿을 이 길 끝에 대한 기대감. 마침내 울타리를 넘어가는 소소, 마침내 우산을 펴는 아저씨, 다친 조랑말을 데리고 끝끝내 걸어가는 소년처럼 꿈은 벽이 있을 때 더더욱 환하게 빛을 발한다. 언제든 집에 돌아가고 싶어질 수도, 우산이 젖고 찢어질 수도, 다리가 부러져 쉬고 싶을 때도 오겠지.
그래도 모두 일어나 다음 벽을 넘어가 볼 것이다. 내 마음의 벽은 오직 내 마음속 꿈만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황유진_작가, 『어른의 그림책』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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