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우리 동네 낮과 밤의 판타지

by 행복한독서
친구네 가는 길, 아이는 동네 곳곳 여행을 떠납니다. 날아가는 풍선도 구경하고 이웃집 할머니에게 사탕도 받고 지나가던 야옹이와 인사도 나누고요. 알록달록 색색의 지붕과 골목 담벼락 사이 주렁주렁 빨래도 춤춰요. 길에서 만나는 마법 같은 시간, 동네는 아이의 우주입니다.



집으로

고혜진 글·그림 / 32쪽 / 19,000원 / 달그림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친구 집에 놀러갑니다. 익숙한 동네 풍경은 사뭇 다르게 설레고 늘 지나가던 이웃집 대문 안 멍멍개는 무섭습니다. 고양이 나비에게 한눈을 팔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친구 집에 도착합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옵니다. 낮에 보았던 동네 풍경은 밤이 되자 두렵습니다. 그때 나타난 꼬마 마녀, 원숭이 아저씨, 홍학 아주머니, 코끼리 아저씨 모두 아이가 아무 일 없이 집으로 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멀리서 엄마가 나와 기다리네요. 집으로 오는 길은 즐겁습니다. 어둠은 두려움이 아닌 또 다른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마법과도 같습니다. 상상을 하면 두려움 또한 즐거운 마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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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는 제 어린 시절 경험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습니다. 처음 구상한 이야기와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사뭇 다릅니다. 제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동생과 싸우다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저는 반항심에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와 친구네 집으로 갔습니다. 혼자 나서는 골목길은 신기하면서 재미있었고 무서웠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 두려움이 밀려올 때 즈음에 엄마가 와서 저와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본 어둠 속 골목은 낮에 보았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바닥에 비치는 그림자와 담벼락의 낙서들,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가 모두 상상 속의 동물로 보였습니다. 어른이 돼서 안 사실이지만, 당시 집을 나갈 때 엄마가 몰래 따라와 저희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엄마는 맹랑한 제 행동에 웃음이 나고 도대체 어디를 가는지 궁금해서 몰래 뒤를 따랐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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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린 나를 만나는 추억 여행입니다. 작업하는 동안 골목 풍경과 사진을 수집하면서 지금은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어렸을 때 살던 동네가 그리웠습니다. 어릴 적 서울의 작은 동네에 살던 한 아이를 기억하는 ‘시간 여행’이었습니다.


초반 작업은 연필 드로잉과 수채화로 골목 풍경을 따스하게 표현하는 정감 있는 그림책을 상상하며 작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따라가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경험이 뭐가 그리 특별하다고 책으로 만드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서사를 따라가는 그림책에서 이미지를 강조한 그림책으로 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과 판타지를 섞어서 작업을 했고, 밤 장면을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낮과 다른 환상의 밤 장면을 만들기 위해 특히 색감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밤 장면이지만 무서움보다는 신비롭고 판타지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낮 장면의 골목 또한 무채색의 빈티지한 색감보다는 강렬한 원색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보는 어른들에게는 옛날 골목의 향수를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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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스캔을 해서 후반 작업을 하고 드로잉을 하는 일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작업이었습니다. 처음 작업하는 병풍책이다 보니 전체 골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장면마다 집들이 어긋나지 않게 맞추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또 낮 장면과 밤 장면을 맞추면서 인위적이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제게는 벅찬 작업이었습니다. 친구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설정에서 그림을 거꾸로 보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는 밤 장면을 넣기 위해 책을 뒤집어 보는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집으로』는 2016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출품해서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이 선정될 거라고는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볼로냐가 디지털 프린트보다는 수작업의 원화를 선호한다는 소식과 그해 저는 다른 작가들과 볼로냐에서 더미북 전시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볼로냐 행사 기간 동안 티켓을 얻는 데 만족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외국 편집자들이 제 작품을 어떻게 볼지 궁금했습니다. 그중 한 스위스 출판사 편집자가 ‘그림의 배경은 한국적이어서 좋았고 이야기는 국제적이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평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글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그림책이지만 글 없는 그림책이 갖는 한계 때문에 글을 넣었습니다. 저는 누구나 그림책을 보면서 공감하고 즐거웠으면 합니다. 그림책이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교훈이 아닌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졌으면 합니다. 또한 이 책을 보는 아이들은 즐거운 상상을 어른들은 추억을 느꼈으면 합니다.



고희영 선생님은 잠잘 시간, 밥 먹을 시간 없이 숨 가쁜 방송 작가 일을 하다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어요. 영화 만드는 일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만큼 멀고 힘들지만, 아직도 걸어서 별을 향해 가는 중이에요. 그렇게 만든 영화로 「물숨」과 「시소」, 밤잠 못 자고 만들었던 방송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어요.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선생님의 첫 그림책이에요.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7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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