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마음 다독이는 다크 그림책

그림책깊이읽기 2

by 행복한독서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아동학대 사건을 보며 어른으로서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자괴감이 들었다. 아이가 무력하게 당했을 참혹한 고통을 떠올릴 때마다 바윗덩어리로 짓누르듯 가슴이 아파왔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한 선배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술만 마시면 괴물처럼 변하는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다가 슬리퍼만 겨우 찾아 신고 도망쳤다는 선배. 그가 아홉 살 때 동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언덕에 올라갔던 건 모든 것을 잊고 뛰어내리고 싶어서였다. 단지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되기 싫어서였다. 아홉 살이 되기까지 너무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견디고 보아온 까닭이었다.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김흥식 글 / 고정순 그림 / 씨드북)에는 어릴 적 선배처럼 알코올중독인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아이가 나온다. 매일 술을 마시고 엄마와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지만,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는 집 안에서의 폭력을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엄마가 먼저 집을 나가자 혼자 남은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더 큰 분노로 일그러진 아빠의 주먹뿐.

가정폭력을 날것 그대로 직설적으로 그려서 오히려 담담한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는 아이의 짓눌린 두려움과 분노를 거칠고 투박한 뭉텅이와도 같은 그림으로 보여준다. 눈, 코, 입이 없는 얼굴로,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수그린 아이의 모습은, 술 취한 아빠의 주먹을 견디며 매 순간 생존해야 했던 아이의 삶을 아프도록 선명히 보여준다.


씨드북_아빠의 술친구.jpg ⓒ씨드북(『아빠의 술친구』)


그림책을 보며 머릿속을 내내 맴돈 것은 아빠의 술친구가 아빠의 주먹과 혀라는 사실이었다.

“아빠의 주먹은 술을 마신다” “술 취한 혓바닥이 우리를 부른다”

와 같은 문장은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주먹’과 욕설을 퍼붓는 ‘혓바닥’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폭력 가해자로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학대 아동들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아빠의 주먹이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른 것이지, 아빠가 그런 것은 아닌 거다. 술만 마시면 괴물처럼 변하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아이가 원래 알고 있는 살가운 아빠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말이다.

이런 연유로 부모에게 정서적, 물리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폭력을 휘두른 부모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가감정 상태이기 쉽다. 또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공격성을 표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 가해자인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해버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 오히려 학대 가해자가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렇듯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시 재현하는 현상을 ‘반복강박’이라고 부른다. 해결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를 다시 되풀이함으로써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을 터.

그림책 『아빠의 술친구』에서 우리는 이 반복강박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한 아이를 만난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나이를 먹어 약해진 아빠의 주먹이 더는 무섭지 않지만, 자신에게도 아빠와 똑같은 주먹이 생긴 것을 알지만,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빠가 죽고 난 후 아빠의 주먹과 혓바닥을 떠올리며, 동시에 나의 주먹과 나의 혓바닥이 담기길 기다리는 빈 술통을 떠올리는 마지막 장면은 서늘하기만 하다. 가정폭력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울고 있는 내 안의 아이 보듬기

그림책 『앵그리맨』(그로 달레 글 / 스베인 니후스 그림 / 황덕령 옮김 / 내인생의책)에서는 이러한 폭력의 대물림이 분노 감정이라는 좀더 구체적인 맥락의 서사로 나타난다. 주인공 소년 보이의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는 노란 접시에 담긴 건포도만큼 기분이 좋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활화산처럼 단숨에 분노를 터뜨리는 앵그리맨으로 변한다. 그 순간 분명 아빠가 화를 내고 있지만, 또 분명 아빠가 아니다. 아빠 목소리 너머 지하실에서 뭔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빠 몸속의 계단을 타고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올라온다. 그렇다, 아빠의 등을 타고 목을 넘어 앵그리맨이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보이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빈다.

“아빠, 제발 앵그리맨이 못 나오게 해 주세요. 못 오게 해 주세요. 착해질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숨도 안 쉴게요.”


앵그리맨(1).jpg ⓒ내인생의책(『앵그리맨』)

한바탕 앵그리맨이 집을 휩쓸고 간 뒤, 폐허처럼 깨지고 부서진 자리에는 “다시는 화 내지 않을게.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 하마.” 괴로워하는 아빠만 작아진 모습으로 불쌍하게 남겨져 있다. 거대한 괴물처럼 분노를 토해내는 앵그리맨과는 사뭇 다른 모습. 앵그리맨이 되어 집안을 초토화시킨 것이 미안했던 걸까? 저녁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려고 주스와 사탕을 사 가지고 집에 와 아들을 안으려 하지만, 보이는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 앵그리맨이 아빠의 등을 타고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그런 보이가 “아빠가 때립니다. 제 잘못인가요?” 세상에 처음으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집안을 옥죄듯 휘감고 있던 분노의 사슬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앵그리맨 뒤에 또 다른 앵그리맨이 존재함을 알게 된 보이.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되어온 폭력, 앵그리맨 뒤에서 울고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걸 가족들은 발견하게 된다.


앵그리맨(2).jpg ⓒ내인생의책(『앵그리맨』)

그림책 치유 워크숍에서 만났던 열 살의 J 역시 분노 조절을 못하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훈육으로 늘 주눅 든 채 매사 불안해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동안 억누르고 회피하기만 했던 마음 깊은 곳의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바라보며, 비로소 “마음이 힘들어요.” “마음이 아파요.” 솔직하게 고백하기 시작하자, J는 아버지의 정서적인 학대에 맞설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J의 아버지 역시 부모 상담을 받으며 오래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로 울고 있는 ‘내 안의 아이’를 보듬어주기 시작했고, 이것은 J의 가족이 함께 치유의 여정길에 오를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이 모두가 자신 안의 두려움을 직면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지던 어둠 속으로 아이와 아빠가 함께 성큼 걸어 들어가 빛을 만들어내는 지난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아직도 그 여정은 진행 중이지만, 상처 속에 똬리 틀고 있던 두려움이란 감정을 직면하여 용기 있게 걸어 나온 것만으로, 삶을 커다랗게 진화하는 한 걸음을 내디뎠던 건 아닐까.


고통을 통찰하고 치유하는 시간

최근 들어 그림책 시장이 넓어지면서 가정폭력이나 장애인, 죽음 등과 같은 사회적인 주제를 담은 이른바 ‘다크 그림책’이 활발히 나오고 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따스한 인식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한편, 무거운 주제와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불안하게 느끼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다크 그림책이 나와 전혀 무관한 세상의 어둠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학대와 폭력이란 어둠을 통찰하지 않는 한, 그 어둠이 계속 대물림되는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어둠을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물에 불린 솜뭉치처럼 점점 커져서 내가 사는 빛의 영역까지 잠식해 들어올 수 있기에. 내 안의 어둔 감정을 바라보고 다독여주지 않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또는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 안의 어둠을 분노로 쉽게 투사해버리는 이치와도 같다.


그 어둠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그림책 『잘 가, 안녕』(김동수 글·그림 / 보림)에서 만날 수 있다. 어둔 밤 트럭에 치여 죽은 검은 강아지를 손수레에 실어 가는 할머니를 따라 집에 들어가자, 깃털이 빠지고 배가 찢어진 부엉이와 고라니 등 죽은 동물들이 로드킬당했던 현장의 모습 그대로 방에 누워있다. 마치 죽은 동물들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밤새 다정히 말을 건네며 상처를 꿰매주고, 붕대를 감아주는 할머니. 죽어갈 때 동물들이 느꼈을 충격과 슬픔의 감정을 따스하게 만져주는 듯하다.

새벽이 되자 할머니는 손수레에 동물들을 실은 채 길을 떠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같은 신비로운 길을 지나 나루터에 다다라 조각배에 동물들을 가지런히 눕히고, 동물들 주위로 예쁜 꽃도 놓아준다. 새벽어둠 속에서 불을 밝힌 연등과 하얀 오리들의 호위 아래, 두둥실 떠내려가는 조각배. 세상의 고통 너머 평화로운 안식의 세상으로 떠나는 것만 같다.

그림책의 마지막은, 저 멀리 떠나는 조각배를 바라보고 서있는 듯한 할머니의 뒷모습이다.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는 하늘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며 할머니는 말한다.

“잘 가, 안녕.”


보림_잘 가 안녕.jpg ⓒ보림(『잘 가, 안녕』)

죽은 동물들의 상처를 꿰매주었던 것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이 돋아날 시간을 기다리며 서있는 것 같다. 완전한 이별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해주는 “잘 가, 안녕”이라는 말이 참 따스하게 다가온다.


그렇다. 다크 그림책은 어둠만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아니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빛을 내밀하게 만들어가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울어주고, 눈과 귀를 깊이 열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울음을 조용히 듣는 일, 어둠 속에서 고통을 치유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윤정선_동화작가, 독서치료사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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