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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09. 2022

한 반 아이들이 오는 서점 나들이

동네책방 체험학습  - ‘책과아이들’

“여러분, 비가 오는데 지하철 타고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여러분이 어디쯤 오는지 2층서 내다보는데 알록달록 우산만 걸어오더라고요. 참 예뻤어요. 그림책 『노란 우산』이 떠올랐답니다. 오늘 그 그림책을 음악과 함께 들려줄게요. 그 전에 여러분, 여긴 어딜까요? 네, ‘책과아이들’입니다. 책과아이들은 서점이에요. 서점은 뭐하는 곳인지 아나요? 맞아요. 자기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서점이지요.

오늘 여러분은 ‘한 반 아이들이 오는 서점 나들이’에 왔습니다. 우리 서점은 책 판매와 더불어 어린이문학을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먼저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실 거예요. 그리고 시 감상을 위한 노래 배우기를 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니 봄노래를 불러봐요. 그리고 그림책을 음악과 함께 직접 들려줄 겁니다.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를 봐요. 영화도 잘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2층 삐삐방에서 이야기를 즐긴 후 5층 평심갤러리에서 책의 원화를 감상해요. 그리고 1층 책사랑방에서 책을 읽거나 책마당에서 꽃과 나무랑 있어도 되고 서점에서 맘에 드는 책을 사도됩니다.”


‘한 반 아이들이 오는 서점 나들이(한반나들이)’에 처음 오는 반에겐 이런 설명을 한다. 매달 한 번씩 꾸준히 오는 경우는 간단한 인사와 바로 “할머니!” 하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2002년 문득 깨달았다. 지금 아이들은 ‘서점’을 모르는구나. 서점 앞에 이미 온라인이 붙었고 아이들 입에도 익숙해진 걸 발견했다. 서점 교육이 필요하구나. 만들어야겠다! 또 부모들과 서점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의 아이는 극소수라는 점이 보였다. 학교나 유치원을 통해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조금 공평하겠지? 이렇게 ‘한반나들이’를 기획했고 대상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로 잡았다.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으며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주이지만 중고등학교, 유아교육과, 교대생, 학부모 독서 모임들의 요청도 있다. 연령별, 계절별, 상황별로 콘텐츠를 구성해 어린이문학을 현장에서 읽게 한다. 참가자에게 가장 인기 있고 오래 기억하는 이는 옛이야기 할머니다. 백발에 한복을 차려입고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미지가 오래 남나 보다. 유아기 때 왔던 기억을 잊었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자원봉사를 와서는 할머니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며 여기 와 봤는데 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현저히 방문수가 줄었다. 출장 한반나들이를 요청하면 맞춤형으로 기획하는데 코로나로 신청도 적지만, 방역 문제로 서로의 요구를 조율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현실이다.


부모와 함께하는 그림책 교실

“엄마, 여기서 할머니가 이야기 들려줬고, 저기 가봐. 토끼랑 닭이 같이 산다. 엄마, 여기는 그냥 책 봐도 되고 여기는 책 사는 덴데…, 나 이 책 사줘!”

한반나들이가 의도와 다르게 서점 운영의 기초석이 되어주었다. 20~30명씩 참여한 한반아이들에게 그 달 소식지를 줘서 보내면 부모가 아이 손에 이끌려 책방을 방문하고, 아이는 신이 나서 엄마에게 서점을 안내한다. 간혹이지만 책과 서점을 찐 사랑할 가족도 생긴다. 특히 유아의 경우는 ‘부모와 함께하는 그림책 감상교실’을 시작으로, 초등 ‘친구와 함께 책읽기반’ 중등 ‘책과 영상읽기, 더불어 인문학반’까지로 10여 년을 이어가기도 한다.


1997년 서점을 열고 금요일마다 ‘회원의 날’이란 이름으로 책 읽어주기를 했다. 좋은 단행본을 골라보자는 뜻을 세워 어린이서점을 열었는데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펼쳐서 읽어주마 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매주했다. 기대보다 참여자가 들쭉날쭉이었다. 그리고 책방을 지속하자면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2003년 ‘아기그림책교실’이란 이름으로 부모 교육을 겸해 그림책을 읽어주고 소개하는 유료 프로그램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해 계절별 연령별 스무 개의 유아용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 부모와 유아가 책방 나들이를 정기적으로 하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이 시기는 반복적인 일상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데다 문학, 그림, 음악을 지속적으로 감상하게 하니 어른과 아이가 함께 어린이문학을 통해 성장하는 게 보였다. 부모들은 그림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아지고 또래 부모들과 교류하며 육아 동지가 되어 책사랑방과 책마당에서 한참을 놀다간다. 그사이 아이들은 마당에서 풀을 뜯으며 소꿉놀이에 여념이 없다.



한반나들이 내용에다 자장가, 전래 놀이, 전래 노래 소개를 더하고, 한반나들이에 비해 주제, 작가, 계절, 연령이 치밀하게 구성된다. 한 계절 동안 반복한 시를 네 살 아이가 노래로 흥얼거리며, 가장 재밌었던 그림책을 안고 서점을 나서는 모습은 우리에게 지속할 이유를 준다. 읽어주기의 힘을 믿어 독후활동은 하지 않지만 수업 자체가 예술이 되도록 연습하고 조율해 여러 사람이 매달린다. 2021년부턴 퍼커션 연주를 곁들여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퍼커션 소리는 유아들의 호기심과 집중도를 높인다. 이 시간이 신난다고 얘기하며 내려오는 아이를 만난다. 탄탄한 이야기의 힘으로 20여 년을 지속한 프로그램이나 적극적인 전환도 꾀할 때가 됨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한 반 아이들이 오는 서점 나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그림책 감상 교실 외에도 25년간 진행하기도, 그만두기도 한 기획들이 많다. 생활연극 두근두근당당하게, 청소년, 가족과 함께 인문학을 읽다, 세이레책읽기, 친구와 함께 책읽기반, 갤러리평심기획, 독서캠프 1박2일, 만남잔치, 책방마실, 책방친구들 모임….


이 지면에선 두 가지를 소개했지만 최근 나온 『서점은 내가 할게 - 책과아이들 25년의 기록』(빨간집)에는 책과아이들에서 시도했던 독서문화 행사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강정아_책과아이들 공동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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