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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04. 2022

이 작은 책을 펼쳐봐

이거 무슨 책이야?

이 작은 책을 펼쳐봐

제시 클라우스 마이어 글 / 이수지 그림 / 이상희 옮김 / 40쪽 / 15,000원 / 비룡소



이 그림책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용감한 아이린』과 같이, 흔히 책 속에서 일어날 일을 짐작케 하는 제목들과는 달리, 책을 펼쳐보라며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을 든 독자라면 펼쳐보기 마련일 책을 굳이 제목에서부터 펼쳐보라고 강권하고 있는 것이다.


앞표지 그림에는 살아 있는 나무 책꽂이를 배경으로 허공에 매달린 듯한 빨간 책 한 권이 그려져 있고 이를 무당벌레가 받치고 서 있다. 바로 그 책 표지에 우리가 펼쳐보게 될 그림책의 제목이 들어 있다. 또 여러 동물들이 책꽂이에 걸터 앉아 책을 보고 있다. 그러니까 커다란 그림책 속에 책 여러 권이 등장하는 형상이다. 표지 그림을 보면 이 그림책에서 책을 읽는 이는 개구리, 토끼, 곰, 무당벌레로 동물이고, 우리는 이 큰 그림책의 독자로서 책 속에 나오는 작은 독자인 동물들의 책읽기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앞표지에서 보여준 대로 책 자체이며, 책을 읽는 동물 독자다. 앞표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동물들이 보고 있는 책의 제목은 지워져 있거나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책을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고유의 책으로 만들어주며,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져 왔던 제목이 빠져 있는 셈이다. 독자는 그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개별 독자의 은밀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반영한 듯, 아니면 자신의 책을 세상에 내놓지만 독자에게 ‘안내’를 가장한 친절을 베풀어, 그들의 책읽기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지극히 자유로운 작가의 마음을 반영한 듯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앞표지를 통해 상상해본 것처럼, 이 그림책에는 실제로 각각의 동물이 읽는 책 여러 권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책의 내용은 고스란히 빠져 있다. 그저 동물들이 읽고 있는 ‘조그만 빨강 그림책’이거나 ‘조그만 초록 그림책’일 뿐이다. 조그만 빨강 그림책에는 무당벌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조그만 초록 그림책으로 개구리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것이 전부다. 이야기는 이렇듯 각각의 동물들이 나와 조그만 색깔 그림책들을 하나씩 들고 읽고 있으며, 거기에는 다음에 소개될 동물들의 이야기가 같은 구조를 통해 반복된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책 속의 책으로 이어지는 여러 권의 책을 펼쳐 보면서 그 개별독자들이 읽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오로지 상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독자들은 같은 책을 보면서도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렇듯 이 그림책은 ‘책’과 ‘책읽기’에 대한 은유라는, 어린이에게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시각적, 물리적 장치를 잘 활용하여 탁월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유아 나름대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장치들을 숨겨놓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무당벌레가 나오는 책의 표지에는 무당벌레 문양을, 토끼가 나오는 그림책 표지에는 주황색 바탕에 흰 당근을, 그리고 곰이 나오는 그림책 표지에는 곰이 좋아하는 꿀을 떠올릴 수 있는 벌집 모양을 그려, 수수께끼에도 즉각적으로 풀 수 있는 것에서 한 단계 넘어야 풀 수 있는 것까지 강약의 리듬을 주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또 가장 작은 무당벌레가 가장 큰 책을, 가장 큰 거인이 가장 작은 책을 보는 것으로 그린다거나, 책은 저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책이 모여 무지갯빛 하나의 ‘커다란 책’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유머와 시각적 이미지의 매력을 넘어 책과 책읽기에 대한 의미를 담아 그림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선희_어린이책 연구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13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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