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May 16. 2022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2020년 5월 1일, 전주책방 열 곳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발대식을 가졌다. 전주시가 ‘책의 도시’를 발표하면서 도서관과 책방이 시민들을 위해 상생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해나가는 시점에서 우리에게도 무언가 하나가 된 ‘조직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주책방네트워크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며, 전주의 도서관 팀들과도 다양한 일들을 고민해나갔다. 그러나 시에서 대규모 예산으로 새로운 콘셉트의 도서관을 짓고 리모델링을 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살피면서 개인적으로는 걱정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책방의 하루하루를 지켜가는 일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동네 곳곳에 멋지고 화려한 도서관들이 자리한다면 책방 손님이 더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책방지기의 현실 고민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도서관이 좋아진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이기에 책방지기도 틈나는 대로 도서관을 다니며 좋은 책 발굴을 일삼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곤 했다.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

2020년의 코로나19는 모두의 발을 묶고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멋지게 지어 개관한 도서관들도 시민들을 만나지 못한 채 문을 닫는 상황 속에서 전주책방들 역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어떤 기관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서도 우리끼리 뭔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일이 필요해보였다. 이래저래 속상한 마음에 모인 책방지기들은 외부 지원 없이 뭔가 재밌는 일을 찾아보자 했고, 서점 카프카 대표의 “문학상은 어떨까요?” 하는 말에 귀가 번뜩, 그렇게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실 ‘문학상’이라는 말 자체에는 묵직한 부담이 있었지만, 앞에 ‘동네책방’이 붙으니 조금은 그 무게를 덜 수 있었다. 동네책방지기들끼리 단독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록 버겁지만 즐거웠다. 



주제를 정할 때에도 거침없이 깔끔하게 정했다. 기관과 같이하는 일이었다면 주제를 정하는 일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과반수의 찬성으로 문학상의 주제가 결정되었다. 주제가 결정된 이후에는 책방들이 역할을 나누어 가졌다. 홍보 포스터를 만들고, 응모자들을 모집하기 위해 같은 날짜에 홍보를 하는 등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처음이고 상금도 매우 적고 어설픈 문학상인지라 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375편의 반짝이는 글을 만나다 

문학상의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문학상 팀의 단톡방은 바빠졌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응모했어요?”라고 질문을 하는 우리도 두근거렸다. 응모 메일을 받던 카프카 대표가 드디어 마감을 치고 총 375명의 작품을 받았다고 할 때는 기쁨 반 두려움 반이었다. 40여 일 동안 무려 시 130명, 소설 62명, 수필 158명, 사진 에세이 25명이 응모를 해준 것이다. 


심사 역시 책방지기들의 몫이었기에 우리는 무척 바쁜 12월을 보냈다. 심사는 문학상을 주최하는 전주 책방 7곳(카프카, 잘 익은 언어들, 에이커북스토어, 살림책방, 물결서사, 책방 토닥토닥, 오래된 새길) 대표들이 모여 일주일에 걸쳐 예선을 보고, 이틀 동안 본선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주제여서 그런지 밝은 내용보다는 지금의 힘든 현실을 써 내려간 글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희망의 한 자락을 열어주는 엔딩이어서 읽으면서 찡하다가도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대상 1편과 각 책방의 이름이 붙은 책방상을 1편씩 선정하여 총 8편을 선정했다. 각 책방상을 정해놓고 대상을 뽑을 땐 소리 내어 낭독하면서 다시금 대상이 되기에 적절한지 귀를 기울였다. 비록 문학 전문가들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모두의 마음에 흡족한 작품을 선정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무언가 즐거웠던 이유는 어딘가 눈치 보지 않고, 무엇에 갇혀있지 않은 상태로 거침없이 심사하고 선택할 수 있었던 자유로움 때문이지 않았을까. 



코로나로 수상자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워 

조재윤 씨의 단편소설 「카레가 끓는 동안」을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이 작품은 식당을 운영하며 매일 카레를 끓이는 주인공이 늙은 반려견의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며 그 너머의 의미를 변주하는 이야기로 독자의 시선을 붙드는 남다른 힘이 있었다. 매 문장마다 소홀히 쓰지 않음이 느껴졌고, 상황 묘사가 뛰어났다. 또한 각 책방상을 수상한 작가들 중에는 군복무 중인 군인도 있고, 70대를 넘긴 어르신도 있었다. 이런 소박한 문학상에 응모한 모든 분들의 공통점은 알아주지 않아도 모두가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책방상을 받은 작가들이 수상 이후 ‘계속 글을 써 내려가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의 보람도 컸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상자들을 직접 만나지 못함이 애석하다. 이 분들과 자리를 갖고 마주할 날이 나중에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해맑게 웃는 순례자의 미소를 떠올리며 최에게 줄 카레를 끓인다.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고 레버를 돌린다. 손가락에 과할 만큼 힘이 들어간다. 불은 아주 잠시 퍼졌다가 미약한 신음을 내며 사라진다. 불은 다시 들어오지 않고 가스를 흘리는 가스레인지를 보며 코를 훌쩍인다. 그가 수저로 그릇에 남은 카레를 모아 입에 넣는다. 
마지막 카레를 아무런 형태가 남지 않은 죽이 될 때까지 입을 오물거린다. 나는 차갑게 굳어 박제된 탱이와 차가운 물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탱이를 생각하며 그가 했던 말을 입안에 넣고 굴린다. 오도카니 서서 단어가 바이두지의 밤처럼 새까만 강물이 될 때까지 끝없이 씹고 또 씹는다. 뼈와 살이 바스러지고 회색빛의 가루가 물에 퍼지자 목줄같이 둥그런 파문이 일어난다. 그 물을 뒤집어쓴 순례자가 코를 훌쩍이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_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대상 수상작 조재윤 「카레가 끓는 동안」 중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든 종이책, 만들기 잘했다 

문학상 수상자들에게 상금과 상품을 전한 뒤, 우리의 다음 일은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연초부터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래도 일곱 군데의 책방지기들이 모여서 함께하니 일이 잘 진행되었다. 텀블벅 사이트를 통해 책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펀딩 경험자인 에이커북스토어 대표의 진두지휘로 텀블벅 사이트가 열렸고, 다행히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책은 무사히 출간될 수 있었다. 우리는 수상자들에게 새로운 작품 한 편씩을 더 받고, 수상 소감과 인터뷰 지면을 늘려 책의 페이지를 채웠다. 인터뷰 형식도 각 책방들이 자유롭게 만들어서 작가들 특유의 문체가 살아있는 책이 된 것 같았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 그대로가 실린 문학상 책은 누가 뭐래도 국내 최초일 듯하다. 표지 디자인을 맡기고, 책 양쪽 날개에 수상자들의 간략한 프로필을 기재하고, 일곱 군데의 책방 소개까지 넣고 책을 마감하였다. 

많은 분들의 호응으로 출간된 『제1회 전주동네책방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동네책방들의 도움으로 멀리 파주부터 제주도까지 거의 모든 시군의 동네책방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모든 과정에 우리가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전국의 동네책방지기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책을 내고 팔았지만 우리의 수익률은 크진 않다.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손해다. 우리는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았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를 만들었고 책을 만들었고 전주책방끼리 즐거웠다. 그걸로 됐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툰 면도 많았지만 그 처음에 동참해준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다. 여름의 한복판이다. 코로나는 다시 기승이고 책방은 여전히 힘겹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버티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번째 문학상을 계획 중이다. 버티는 우리 모두를 위해. 



이지선_전주 ‘잘 익은 언어들’ 대표, 전주책방네트워크 회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책과 함께 사람을 읽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