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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17. 2022

보세주르 레지던스

소비와 욕망에 대해 질문하는 그림책

보세주르 레지던스

질 바슐레 글·그림 / 나선희 옮김 / 36쪽 / 15,000원 / 책빛 



여기 유니콘 푸퓌의 방을 보여드릴게요. 피플지와 스마트폰, TV, 리모컨, 트위터와 스냅챗 모양의 인테리어, 감자칩, 마시멜로, 콜라, 넘쳐나는 팬레터, 화려했던 순간들을 기념하는 장식들. ‘힙’한 비트를 실어 소개하면 딱 어울리겠어요. 이것들은 현대인의 욕망을 담아낸 소비사회의 단면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푸퓌의 방은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푸퓌가 보고 있는 TV 속 뉴스 진행자는 이제 유니콘의 시대는 갔다고 말합니다. 새로 유행하는 통토리우스의 시대가 왔다고 말이지요.


한때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었던 유니콘. 그들은 순식간에 유행의 선두에서 밀려나 수많은 유니콘을 실은 버스를 타고 보세주르 레지던스로 가게 됩니다. 그림책 『보세주르 레지던스』는 이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유행에 뒤처진 동물들이 다시 아이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다리며 머무르는 보세주르 레지던스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단 하나! 지하실 출입이 금지된다는 것만 지키면 됩니다. 동물들은 바쁘게 보내는 일상에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너무 안락하고 그저 정해진 것만 따르면 되니까요. 보세주르 레지던스 안에서의 삶은 바쁜 일상으로 인해 여러 상황에 질문하기를 꺼리는 현대인들의 일상과도 닮았습니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들에는 독특한 동물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보세주르 레지던스』에서는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동물들이란 설정의 이면에 소비와 욕망에 변주된 동물 캐릭터라는 그늘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유행 1순위를 놓고 서로 경계의 대상이었던 유니콘 푸퓌와 통토리우스 도뒤가 친구가 되어 밝혀내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이야기의 절정, 그리고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그림책은 메타픽션의 구조를 취하면서 독자를 추리로 이끌고 질문하게끔 만듭니다. 영화 「샤이닝」에 대한 오마주와 예술 작품의 패러디, 우리에게 친숙한 캐릭터들, 작가의 그림책 속 캐릭터들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들을 더욱 그림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죠.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새로운 무언가를 또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보세주르 레지던스』는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장치들로 비밀의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모습은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현대사회의 욕망과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대한 사유, 결국에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질문하게 만듭니다.


소비는 삶의 일부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조장되어 결핍과 소외감을 맛보게 할 수 있는 그 유행의 본질을 생각해본다면 각자의 질문하기는 계속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쫓는가?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하고 말이죠. 영웅으로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물이 다시 될 수 있는 기회는 푸퓌와 도뒤에게 이제 상관없는 일입니다. 푸퓌와 도뒤는 자신들이 즐겁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았으니까요. 깔끔한 무지개 벽지로 꾸며진 푸퓌의 방에서 도뒤와 함께 이제는 사라진 보세주르의 옛 기억을 두런두런 나누고 있을 것만 같네요. “굿바이 보세주르!”를 외치면서요.


조성순_그림책방 콕콕콕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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