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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18. 2022

키오스크

무너진 일상을 전복하는 힘

키오스크

아네테 멜레세 글·그림 / 김서정 옮김 / 32쪽 / 18,000원 / 미래아이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이루고 싶은 일을 마음에 품고 있나요?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책방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치고, 목표한 돈을 모으고 나면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고 꿈꿔왔어요. 그런데 저는 ‘마쉬’라는 그림책방을 차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혹시 돈에 여유가 생겼냐고요? 아니요, 정반대입니다.


최근 그림책 『키오스크』를 만났습니다. 자주 그렇지만 여기에 제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키오스크(kiosks)는 ‘신문, 음료 등을 파는 매점’을 뜻하는 영어단어로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의 무인 단말기를 가리킵니다. 이 그림책에는 마치 무인 단말기처럼 키오스크 안의 세상에 앉아 물건을 파는 주인공 올가가 나옵니다. 올가는 키오스크 안에만 살면서 구멍만큼만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키오스크 밖을 나오고 싶은 마음은 여행 잡지의 환상적인 바다를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하며 그저 살아갑니다. 올가는 자신이 키오스크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올가의 세상인 키오스크가 뒤집혀버리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붙박이로 무인 단말기처럼 살던 올가가 난생처음 키오스크를 들고 이동하며 사건을 겪습니다. 올가의 키오스크는 올가가 꿈꾸던 바다로 흘러갑니다. 바다에 가기는커녕 자신의 할 일과 자신의 전부를 가두어두었던 올가의 세상, 키오스크가 뒤집히는 불행이 오자 올가는 스스로의 힘을 깨닫게 되었고 키오스크는 올가를 꿈꾸던 세상으로 데려다줍니다.


해야 되는 일, 해내야 하는 역할 속에만 자신을 가둬두었던 저 역시 제 세상이 완전히 뒤집혀버리고 난 후 사건을 묵묵히 수습해 나가면서 난생처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림책테라피스트였고 그림책방이었습니다. 예전의 저처럼 자신을 키오스크 안에 가두거나 혹독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친구가 되어주는 그림책을 안내하는 사람으로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일상이 반복되지만 삶을 바라는 새로운 시선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 늘 같은 곳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 말이죠. 다시 키오스크 안에서의 삶을 반복하는 올가이지만 이전과 눈빛이 달라진 것처럼요.


세상은 때론 지루하고 자주 잔인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뒤집힌 세상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벌써 2년 가까이 반복되는 코로나 일상이 무겁고 버겁더라도 한 발 내디디며 일상을 만들어가는 것처럼요. 그림책의 위로와 응원의 손길을 살짝 보태며 그 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김미영_한옥 그림책방 마쉬 대표, 그림책테라피스트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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