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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19. 2022

결혼식에 간 훌리안

무지갯빛 사랑을 위한 파티

결혼식에 간 훌리안

제시카 러브 글·그림 / 신형건 옮김 / 40쪽 / 15,000원 / 보물창고 



흙빛을 머금은 종이 바탕색은 흡사 등장인물들의 부드러운 피부 결 같기도 합니다. 우아한 갈색 바탕은 형형색색의 옷차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요. 풍성한 백발의 훌리안 할머니, 연보랏빛 수트를 차려입은 훌리안과 살굿빛 이브닝드레스를 걸친 마리솔, 그리고 순백의 옷으로 단장한 신부들까지 모두 자기만의 표현 방식으로 빛나지요. 따뜻한 전구 불빛처럼 결혼식장을 밝히는 단풍나무와 상큼한 민트 머릿결을 흩날리는 버드나무는 또 어떻고요. 쉴 새 없이 터지는 폭죽을 바라보는 것처럼 독자는 행복감에 빠져듭니다.


훌리안과 마리솔 곁으로 가까이 가볼까요? 할머니에게 마리솔을 소개받는 훌리안은 조금 긴장한 듯 보여요. 반면 야구 모자 대신 빨간 양귀비꽃 화관으로 바꿔 쓴 마리솔은 아주 당당한 자세로 훌리안에게 악수를 청합니다. 화동으로 함께 선 서먹한 시간도 잠깐, 속닥속닥 귓속말을 나누기도 하고, 느티나무를 요정의 집이라 상상하며 그들만의 놀이에 흠뻑 빠져듭니다. 그러는 동안 결혼식은 점점 더 무르익어가지요. 



그림책에서 결혼 서약을 맺는 이들은 두 신부, 그러니까 동성 부부입니다. 두 사람 역시 특별한 날을 위해 한껏 꾸몄어요. 한 신부는 층층의 러플 드레스를 입고 에바 알머슨의 「활짝 핀 꽃」처럼 머리 장식을 했고요. 또 다른 신부는 잘게 땋은 레게머리를 노란 밴드로 정성껏 묶고 몸에 딱 떨어지는 완벽한 수트를 입었어요. 수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서 두 손 꼭 맞잡고 입맞춤하는 그녀들은 행복감을 숨길 수 없죠.


제시카 러브의 새로운 이야기를 두고 어느 칼럼은 “젠더 표현에 대한 즐거운 탐구를 보여준다”라고 평했는데요. 아직은 낯선 동성 결혼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젠더라는 이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자유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떤 특정한 이름 안에 가둘 필요가 있을까요. 이름은 이야기가 가진 다채로움을 되려 방해하기도 해요. 제시카 러브는 2018년 11월 인터뷰에서 키가 큰 약혼녀와 함께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젠더라는 시대 담론을 책에 담아내기보다는 실재하는 자기 삶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커밍아웃도 젠더도 아닌 그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말이에요.


그림책 속 인물들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놀며 삶을 누립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피부색, 성별의 다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과 친구의 존중 속에서 훌륭한 개인으로 등장합니다. 제시카 러브의 그림과 서사가 가진 해방감 덕분인지 그녀의 책은 어른 독자에게 유독 큰 사랑을 받아요. 저는 이 책이 어린이 독자에게도 많이 가닿았으면 합니다. 이 환상적인 그림책이 어린이와 어린이 시절을 잊지 않은 순수한 독자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음을 꼭 알아차려 주세요. 어느덧 우리들 일상에도 작가의 무지갯빛 사랑이 자연스럽게 물들도록 말이에요.


김선희_어린이청소년책방 민들레글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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