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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20. 2022

공원에서

서로를 향한 시선과 목소리

공원에서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 공경희 옮김 / 40쪽 / 13,000원 / 웅진주니어



쓸쓸한 표정을 한 찰스가 창밖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혼자여서 심심하던 차, 엄마가 반려견 빅토리아를 앞세우고 찰스와 함께 공원으로 나섭니다. 그렇지만 찰스의 눈에는 공원이 온통 회색빛입니다. 벤치에 앉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아이 스머지가 먼저 말을 걸고, 찰스는 조금씩 마음을 열며 함께 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둘은 공원에서 꿈과 같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하늘의 먹구름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찰스의 마음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엄마가 부르자 찰스는 자꾸 공원 쪽을 돌아보며 집으로 향합니다. 찰스와 반대로 밝고 활기찬 스머지가 보는 공원은 알록달록 생기가 넘칩니다. 놀 친구를 먼저 찾는 이 능동적인 아이는 미끄럼틀, 구름사다리 타기에 능숙하고 찰스에게서는 나무 타는 법을 배웁니다. 공원은 어느새 놀이동산과 같은 환상의 장소가 되어있습니다. ‘찰리’와 함께해서 말이지요. 

새로운 옷을 입고 복간된 앤서니 브라운의 1998년작 『공원에서』 속 아이들입니다. 원작의 제목인 『Voices in the Park』가 힌트를 주듯이, 공원에 온 네 명이 화자가 되어 한 명씩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겪은 동일한 해프닝을 각자의 시선에서 이야기합니다. 네 명의 심리와 성격을 묘사한 배경과 색감이 각기 다르고 글씨체도 네 가지입니다. 독자인 우리는 네 명의 목소리를 다 들은 후에야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는 옴니버스식 구조를 갖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곳곳에 숨은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그림 장치들까지 더해져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앤서니 브라운의 재능을 모두 압축해놓은 ‘끝판왕’인 것 같습니다. 


다시 책을 처음으로 넘겨봅니다. 첫 번째 목소리는 찰스의 엄마입니다. 공원 산책에 다소 어울리지 않은 화려한 복장을 한 그녀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고 시종일관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찰스의 뒷모습이 축 쳐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아들과 거리를 두고 앉은 벤치에서 눈을 감고 홀로 생각에 잠기지요. 두 번째 목소리는 스머지의 아빠입니다. 실직한 그는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딸과 반려견을 데리고 공원으로 향합니다. 그의 기분은 딸과 함께 돌아가는 길에서 미소와 함께 전환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뒷배경에서는 반려견 두 마리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뛰놉니다.


같은 일을 겪고도 각자가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는 것을 아이들이 깨달음과 동시에 어른인 우리의 눈에는 서로서로 단절된 세상을 사는 이들이 보입니다. 편견으로 가득찬 엄마, 엄마의 그늘 밑에서 외로운 아이, 세상과 단절을 ‘당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빠와 희망을 상징하는 허물없는 스머지. 함께하는 것이 이토록 즐겁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것인데 말입니다. 


봄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립니다. 배울 권리, 놀 권리, 함께할 권리 등을 빼앗긴 채 세상과 거의 단절되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올해는 학교와 유치원에서 마음껏 어울려 놀고 서로를 향한 시선과 목소리가 뒤섞여 함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민영_그림책방 박쥐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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