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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26. 2022

딸기책방의 매력 속으로 빠져볼 시간

장동석이 만난 책방인 - 강화도 딸기책방 위원석 대표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5월 1일. 강화도 딸기책방에 처음 발걸음한 날이다. 별다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래전 취재했던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다시금 보고 싶었고, 그곳을 두어 시간 배회하다가 갑자기 생각나 기별도 없이 딸기책방으로 들이닥쳤다. 출판사 편집주간으로 일하던 때 전화와 이메일로만 이야기를 나눈 낯선 손님을 위원석 대표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이 11개월 정도 흘러 다시 2020년 4월 5일. 원래 약속은 그다음 주였으나, 운전대를 잡은 김에 “가겠노라” 전화했더니 위원석 대표는 반가운 말투로 “기다리겠노라” 응답했다. 모든 게 우연처럼 일어났지만, 시종 유쾌하고 진지한 시간들이었다. 


ⓒ위원석


딸기책방이 강화도 초입에 문을 연 건 2018년 4월. 애초에는 책방을 열 생각은 못했다. 20년 넘게 편집자로 일했으니 출판사를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7년여를 다닌 출판사를 2017년 봄에 그만두고 당장은 마음 편히 쉬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더는 미룰 수 없어 ‘딸기책방’이라는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부터 했다. 그런데 이미 10년도 넘게 강화도 주민이었던 위원석, 박종란 부부에게 특별한 공간 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지금의 딸기책방 자리였다. 


두 사람의 집은 마니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간 출퇴근에 치여 강화도의 진짜 매력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 아쉬움을 만회하려는 듯 이곳저곳을 산책했고, 대한성공회 강화성당과 용흥궁 인근을 산책하다가 낡은 건물 하나에 붙은 ‘임대 문의’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오래 비어있는 듯 보이는 낡은 창고 건물, 아니 사실은 “엉망진창인 공간”이었다. 흙과 지푸라기로 덧대있던 벽은 뚝뚝 떨어져 내렸고, 식당 자리였는지 곳곳에 기름때가 묻어났다. 그래도 오래된 건물이니 서까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흔적이 보였고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집에서 일하기보다 사무실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커졌다. 내처 책방까지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거짓말처럼 책방이 시작되었다”며 위원석 대표는 사람 좋게 웃었다. 

공간을 꾸미는 일은 석 달 넘게 걸렸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했고, 몇몇 곳은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다만 생각한 것은 인위적이지 않은, 본래부터 그런 듯한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위원석 대표가 한 매체에 쓴 글은 이렇다. 

“내가 존경심을 갖게 된 읍내의 오래된 골목처럼, 실로 꿰맨 듯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낡은 집처럼, 딸기책방도 그곳에 사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럼 없이 우리의 간절함이 드러나서 찾아오는 사람도 거추장스러운 경계심을 무심히 벗어던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었습니다.” 


딸기책방은 그림책과 만화책 전문 책방이다. 출판사 딸기책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겠지만 책방 하는 일은 출판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고, 출판하는 일은 책방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원석 대표는 “책방을 하다 보니 책을 보는 다른 관점이 조금씩 생기더라”고 말한다. 어린이들이, 함께 온 어른들이 책방을 찾아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그때마다 얻는 아이디어를 책 만드는 일에 접목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책 만드는 일도 책방 한쪽 끝에 있는 작업실이 아니라 출구 쪽에 있는 계산대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책방 공간에서 출판사 딸기책방의 독자 중심 편집은 그렇게 이뤄지는 셈이다. 

“예전에도 대형서점에 가서 쭉 훑어보고 독자의 생각 혹은 서점의 관점은 무엇인가 생각하긴 했어요. 물론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단적으로 말하자면 책방과 출판사를 함께하니까 책에 대한 애정도 더 깊어지는 걸 느껴요. 솔직히 말하면 책방을 하니까 출판사 이미지에도 조금 도움이 되고요. 하하” 


책방은 좋은 인연도 만들어준다. 어린이책 관련 단체들이 종종 드나들고, 그림책작가가 되려는 이들이 포트폴리오를 들고 때때로 찾기도 한다. 오는 6월 말쯤, 그렇게 인연이 된 신인 작가의 그림책이 한 권 출간될 예정이다. 하지만 책방과 출판사를 함께하면서 “다소 목가적으로 생각하는 걸 늘 경계한다”고 위원석 대표는 말한다. 책방이 생업인 분들에게는 한없이 죄송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책방이 아무리 좋아도 임대료는 엄연한 현실이고, 그런 문제들 앞에서 날마다 고민하는 여러 책방지기들에게 자칫 누가 될 수도 있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책방 일에 더 열심을 내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말한다. 


딸기책방을 찾는 이들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반반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책들을 살펴보는 동네 주민들이 반이고, 작정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또 반이다. 동네 어떤 분들은 이제 일삼아 책방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기도 한다. 작정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인근 강화성당과 용흥궁 등지를 거쳐서 온다. 물론 오로지 딸기책방을 먼저 들렀다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구비하는 일, 계절과 날씨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일, 커피를 내리고 서빙하는 일조차 호사가 아니겠냐고 말하는 위원석 대표는 애초부터 책방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위원석 대표는 책방이든 출판사든 딸기책방만의 더 뚜렷한 색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매여있으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마음을 주며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줄어들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딸기책방이 일종의 판타지 공간처럼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근사하게 꾸민다고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지역과 어울릴 만한 문화콘텐츠는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두어 번 발길로 딸기책방의 매력과 가능성을 풀어내기란 어렵다. 그래서 속으로 다짐해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강화도의 매력과 함께, 딸기책방은 그곳에서 어떤 조화로움과 매력을 펼쳐낼지 자주 찾아가자고 말이다.


장동석_출판평론가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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