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May 27. 2022

큰 세계를 품은 작은 공간

장동석이 만난 책방인 - 수원 마그앤그래 이소영 대표

마그앤그래. 인터뷰 첫 질문은 책방 이름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귀동냥으로 알고 있었지만, 책방 주인에게 들어야 제맛 아니겠는가. 마그넷(Magnet)과 그래비티(Gravity), 이소영 대표가 생각하기에 ‘자기력과 중력’은 ‘지구에 작용하는 가장 큰 힘’이었고, 책은 ‘지구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이었다. 비록 작은 책방이지만 이름만큼은 거창하게 지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애초에는 작업실을 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예술과 과학 분야 글을 쓰는 작가인 이소영 대표 눈에 들어온 공간은 대로변 1층. 사진과 꽃 등 생활예술 전문가인 동생과 아예 책방을 해보자고 합의했다.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지 않고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소영 대표. “시작할 때 지금 모습을 상상 못했던 것처럼, 2~3년 뒤에는 또 다른 모습이겠죠. 그래서 더 재미있고요.”  

ⓒ마그앤그래

마그앤그래는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은 수원시 권선동 한적한 아파트 단지 상가 2층에 위치해 있다. 책방 문을 연 지 3년이 채 못 되었고, 지난해 9월에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막 새롭게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한데 코로나19 영향으로 이렇다 할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운영이 어렵겠구나 짐작하고 “가장 어려운 일”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사가 가장 어려워요.” 

공간을 심플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어쩔 수 없이 단출하게 꾸밀 수밖에 없다. 별다른 가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사 때마다 배치가 힘들었단다. 작은 공간에 책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반짝이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작은 책방의 애환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지원사업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신청해서 선정된 지원사업은 빠짐없이 진행했다. 하지만 올해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지원사업은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는 때가 많았다. 기획 단계부터 협의를 해야 하고, 협의를 한 만큼 정산 혹은 정리할 것들도 많았다. 그런 일들보다 마음을 어렵게 한 건 무엇보다 독자 커뮤니티로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지원사업의 경우 계속 새로운 기획을 만들어야 하고, 참여하는 분들도 서울은 물론 경기 전역에서 오기 때문에 일정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어요. 작은 책방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마을 사람들이 계속 와주시는 거잖아요. 그래야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요. 그래서 지원사업에 쏟을 에너지를 조만간 아파트에 전단지 돌리는 일에 쓰려고요.”


코로나가 극성을 부렸던 3월과 4월 매출은 평소 절반도 되지 못했다. 지원사업을 했으면 달라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지금 마음이 더 편하단다. 이 대표는 “지금부터 찬찬히 하면 되지 않겠냐”며 사람 좋게 웃는다. (아, 마스크에 가려 환하게 웃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대신 마그앤그래가 준비한 책들은 읽을 만하다는 확신을 주려고 노력한다. 사실 어린이나 예술 등 특화된 서점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이 대표는 

“대중적 취향을 따르지는 않겠지만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파는 책방이라는 소문은 확실하게 내고 싶다”

는 바람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아울러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드러내지도 않으려고 한다. 흔한 말로 ‘셀럽’들이 운영하는 서점은 어느 순간 그 한계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잠깐 반짝할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롱런은 쉽지 않다. 물론 셀럽들의 책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스스로 셀럽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필요하다면 예술 분야에서 유아부터 어른까지 다채롭게 읽음 직한 책들을 선정할 뿐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그앤그래가 들어선 수원 권선동, 즉 지역 영향도 크다. 권선동은 수원에서 아파트가 처음 형성된 비교적 오래된 동네다. 전철역이 가까이 있지만 주민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데도 익숙하다. 인근 영통, 광교 일대는 교육열이 높지만 권선동 아이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오랫동안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회성 사업보다 주민들과 긴 호흡으로 함께하는 것이 맞을 수밖에 없는 입지를 가진 셈이다. 이사는 어렵지만 이곳으로 옮겨오길 잘했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이소영 대표는 최근 출판사들이 작은 책방에 관심 가져주는 것을 반겼다. 시시때때로 소식지를 보내주는 곳도 있고,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물어봐주는 곳들도 있다. 현매여서 그만큼 신중하게 책을 골라야 하고 그만큼 소심해질 때도 있지만, 말길이 오가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지 않다. 작은 책방을 어려운 출판사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창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명 ‘동네책방 에디션’이 유행하는데 피로감이 없을 수 없다. 그 경우 대략 열 권을 구비해야 하는데 ‘평생 팔아도 어려운 부수’라고 해야 맞다. 각종 굿즈도 상황은 비슷하다. 


SNS를 잘 활용하는 작은 책방들이 많지만, 이소영 대표는 웬만하면 SNS를 하지 말자는 주의다. 자칫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펴나가면 그것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겠지만, 역시나 적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게 찾아주는 분들도 감사하지만, 권선동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접으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홀연히 나타나 책을 주문해 가는 ‘천사손님’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SNS에 올리면 소문이야 더 나겠지만, 자신만의 기쁨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게 이소영 대표의 말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소영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오래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런 모습이 성실해 보여서든 혹은 불쌍해 보여서든 수고를 아끼지 않고 찾아와 책을 사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이 대표는 “취미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해볼 생각”이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여러 모임을 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지만, 몇몇 대안들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 온라인 북클럽 등 커뮤니티를 만들 생각이다. 소설을 함께 읽는 모임도 준비 중이다. 마그앤그래는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이름처럼 세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책들로 가득하다. 지구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힘이 그곳에 있기에, 그곳에서 존재감을 뽐내리라 생각해본다. 


장동석_출판평론가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딸기책방의 매력 속으로 빠져볼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