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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May 30. 2022

책이 주는 여전한 기쁨을 경험하고 싶다면

책이 주는 여전한 기쁨을 경험하고 싶다면

초지대교를 지나 10분 정도 갔을까, 내비게이션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로 이끈다. 잠깐이었지만 ‘이런 곳에 책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흰 벽에 ‘책방 국자와주걱’이라고 쓴 작은 시골집. 또 잠깐 생각했다. ‘이 책방에 찾아오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있다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이 이리저리 튀는 사이,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김현숙 대표가 시원한 미숫가루 한 잔을 건넨다.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예고된 날에 안성맞춤인 음료였다. 


책방 국자와주걱이 위치한 곳은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 흔히 강화도라 부르는 그곳이다. 25가구 80여 명이 사는, 작다면 작은 마을에 국자와주걱의 문을 연 건 2016년. 김현숙 대표는 오랜 도시 생활 끝에 2007년 귀촌했는데, 꼭 10년 만에 일을 벌인 것이다. 그전에도 가만히 앉아 시골 생활을 만끽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포도 농사를 지었고,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불러내 먹을거리를 나눴다. 


ⓒ국자와주걱


무엇이든 나누려는 김 대표의 마음을 알았을까. 책방을 열기로 하고 그래도 번듯한 이름을 짓고 싶어 고민하던 때 강화도 시인 함민복이 전화를 걸어왔다. ‘국자와 주걱’이 어떻겠냐고. 밥과 국이 주식인 한국 사람들에게는 국자와 주걱은 필수품 아니겠는가. 식구이든 손님이든 혹은 이름 모를 누군가이든, 무엇이든 퍼주는 살림 도구인 국자와 주걱처럼 책방에서 작은 지식을 퍼 나르면 좋겠다고 김 대표는 생각했다. 어디 지식만 퍼 나를까, 삶의 온기와 온정도 함께 퍼지지 않겠는가. 


삶의 온기와 온정을 나누려고 늘 마음먹고 있지만, 외진 곳이라 누가 얼마나 방문할지는 김 대표도 예측할 수 없단다. 한 명도 오지 않는 날이 있는가 하면, 십여 명이 무리를 지어 올 때도 있다. 인터뷰 중에 그런 이들이 들이닥쳤다. 세 명이 함께 부천에서 왔다는 어떤 이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다”면서 “내 집처럼 아늑한 느낌”이라며 좋아했다. 연신 책장을 살피더니 아는 저자 이름이 나오자 김현숙 대표에게 두어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공적인 질문과 대답에만 익숙한 나이지만,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온기와 온정을 발견한다. 


곧이어 단체 방문도 이어졌다. 책방 인근에 있는 강남중학교 교사 일행이 책방에서 작은 모임을 하기로 했단다. 순식간에 작은 책방 안이 차고 넘쳤지만, 다들 마음만큼은 넉넉해 보였다. 각자 관심 있는 책들을 찾는 발걸음과 눈길이,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답답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제야 책방 문을 연 이유를 물었다. 책이 좋아 책방을 열었을 뿐, 뚜렷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물론 찾아보면 이유가 왜 없었을까만, 김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즐거움만한 것이 있겠냐며 웃는다. 이어 김 대표는 책을 읽는 일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도 끝까지 할 내 일을 찾아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때 시골로 내려오면서 싸들고 온 책들이 보였어요. 아, 책방을 해야겠다. 안 팔리면 내가 읽으면 되고…. 자연만큼 책읽기 좋은 곳이 어디 있어요? 생각해보니 책방은 깊은 산속, 숲속에 있어야 맞다 싶었던 거죠. 볼 사람은 거기가 어디든 가서 보거든요.” 


이 즐거운 일을 왜 빨리 시작하지 않느냐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책방을 낼까 고민이라고 말했더니 이미 출판사에서 일하는 몇몇 지인들은 아예 책을 보내주었다. 책방을 먼저 하던 이들은 책을 구매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들 때문에 아예 큰 도매상이 먼저 연락을 해왔고, 이제까지 책을 수급하는 일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뭘 알고 시작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들이 하나둘, 차근차근 풀리면서 책방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업식도 없이 시작한 책방이지만 시시때때로 다양한 문화 행사들을 이어갔다. 시인들이 와서 시를 낭송하고, 예인들은 와서 노래하고 연주했다. 따로따로 하기도 했지만, 요즘 말로 문학과 예술이 컬래버레이션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긴 어디 책만 책인가. 세상 모든 사물과 사건에 읽어낼 것이 천지 아니겠는가. 김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 혹은 예술은 삶이 묻어나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이 공연장 아니겠어요? 매일 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예술이잖아요. 그러니 논두렁에서도 노래할 수 있고, 앞마당이나 뒤뜰에서 시 낭송도 할 수 있는 거죠.” 



책방은 넉넉한 주인의 성정을 닮아서인지 작지만 아늑하다. 북스테이를 하는 이들은 하루, 아니 원하는 만큼 책방의 (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옷장을 통해 나니아로 들어가는 네 명 아이들의 심정이지는 않을까. 혹은 대인국과 소인국을 오가는 걸리버의 마음이지는 않았을까. 그 환상의 세계에서 하루를 자고 나면, 아침에는 책방 주인이 풍성한 아침식사를 차려준다.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 불현듯 생각이 종잡을 수 없이 튄다. 책에는 미래가 없다고 하는 이들에게 당부한다. 책으로 넓혀갈 수 있는 생각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고, 그것과 인접한 우리네 삶은 늘 새로운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책방 국자와주걱은 그런 가능성을 품은, 작지만 큰 공간이다. 그래도 어려운 점이 왜 없을까.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접어야 하나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이유를 물으니 “젊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더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물쭈물 대꾸를 못 하고 있는데, 김 대표가 말한다. 

“그래도 여기서 계속하고 싶어요. 어디선가 보고 찾아왔다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줄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새 책 만나는 일은 여전히 재미있어요. 처음, 감동, 새 느낌 이런 말들이 주는 아름다움이 여기 있어요.” 


김현숙 대표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책방 국자와주걱의 문을 나서는 순간, 왁자지껄한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그리고 안도한다. ‘더 오래 강화도에 남아 있겠구나.’ 그럼 된 거다. 그게 곧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이기에. 책이 주는 여전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강추한다.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그곳, 책방 국자와주걱으로 향하시라. 


장동석_출판평론가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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