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Jun 30. 2022

아름다운 삶을 고민하는 그대에게

책의 시선들 - 주제가 있는 큐레이션 1

스무 살 때 선배의 권유로 처음 읽었던 책들 중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있었다. 지식인이란 남들이 다 잠들었을 때도 깨어있는, 세상 모든 이들이 옳다고 할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임을 그때 배웠다. 어쩌면 나에게 지식인은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던 김수영의 시 「눈」의 이미지로 더 선명하게 남아있기도 하다. 

이 이미지는 나에게 어떤 긴 글보다 더 선명하게 지식인이라는 존재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지식인으로 살기는 스무 살 때 꿈꾸었던 것처럼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깨어있는 지식인을 꿈꾸는 내게 변하지 않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비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지 오웰이다. 그는 『1984』와 『동물농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직접 현장에 참여해 생생하게 묘사한 르포르타주들도 깊은 감동을 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앙드레 말로 같은 전 세계 지식인들이 참전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스페인 내전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과 아나키즘의 실험 무대였던 카탈로니아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1937년 말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공화파 의용군으로 싸우다가 바르셀로나 전선에서 부상당했다. 그는 좌익 내부의 당파 싸움에 휘말렸다가 간신히 귀국하였는데 이때의 경험을 담은 소설이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혁명적 열정으로 의용군에 참가한 오웰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전투에 투입된 병사들과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혁명의 약속과 권력의 배반을 목격하며 좌절과 환멸을 맛본다. 

책을 읽노라면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 감상이 섞이지 않은 사실적 문장으로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잠들지 않는 지식인의 양심과 열정을 느끼게 된다. 영국 북부 탄광 지대 광부들의 삶을 그린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함께 강렬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나를 짓는 사유의 날개 

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사회가 미친 팽이처럼 돌아간다. 양심도 염치도 실종된 것 같다. 어디에서 마음을 지탱하고 삶을 버티어낼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책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홍세화는 『결 : 거칢에 대하여』에서 우리 이웃 중 누구도 추위와 배고픔, 가난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자유로운 존재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의식주를 잘 지어야 하듯이, 우리 각자도 잘 지어야 할 게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를 어떤 존재로 지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부단히 던져야 한다. 나는 나를 짓는 주체이면서 내가 짓는 객체이다. 인간이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면서 외로운 존재인 것은 이 점 때문이며, 자유는 외로움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외로움과 함께 밀려오는 심리적 불안도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왜’라는 질문을 봉쇄당한 사회, 스스로 생각하고 회의하며 자유로운 주체가 되기보다 지배 세력이 선정한 생각을 주입당한 채 회의할 줄도 모르고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는 데서 불통과 온갖 병폐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스스로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며, 부디 자신의 사유 세계를 반성적으로 들여다보고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도록 사유 세계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길 당부한다. 

1976년 독일에서 ‘정치교육에 대한 방향’을 주제로 좌우 정치교육학자가 토론한 후에 정립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소개하며 우리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1970년대 유신정권 때 반체제 조직 사건으로 알려졌던 남민전 사건으로 정치적 망명자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보낸 시간들을 에세이로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졌으며 신문사 기자, 진보정당 대표를 거쳐, 현재는 빈자들을 위한 무담보대출은행인 장발장은행 대표를 맡고 있는 작가의 최근작이다. 


혐오의 시대 건너기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라는 명성을 지닌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들이 국내에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2011년에 소개된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라는 책을 통해 처음 그를 만났는데,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책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는 트럼프로 상징되는 미국 내 혐오 정치를 감정이라는 코드로 분석한다. 그는 이 책에서 무력하게 태어난 인간이 생애 처음으로 마주하는 두려움이 분노라는 괴물로 변화하고, 혐오와 배제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삶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분노와 혐오 같은 감정으로 전염될 때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당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정치사회적 현상과도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두려움은 자신의 행복에 위협이 임박했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가올 사건이 생존이나 행복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인식할 때, 그 일이 곧 닥칠지도 모르며 실제로 발생한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도 물리칠 수도 없다고 느낄 때에만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 옆에서 혼자 놀 수 있는 어린이는 순응을 요구하는 강력한 힘 앞에서도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나야 한다. 민주주의는 진실과 이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의지를 배양해야 한다. 또한 민주주의는 파괴적이고 헛된 보복 욕구를 포기하고 인간의 안녕과 사법 정의라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이라는 부제처럼, 혐오의 시대에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아 민주주의의 이상을 가꾸어나가는 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공동체를 촉진하는 사회적 연결망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되어 분열되고 갈등하는 도시인들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공공지식연구소 소장인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도시계획에서 그 답을 찾는다.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저자는 1995년 시카고 폭염 사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재난을 견딜 힘으로서 사회적 연결망에 주목한다.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공고하게 해주는 곳들 중 저자가 가장 먼저 눈여겨보는 곳은 지역의 공공도서관이다. 이민자와 노인, 아기와 함께 고립된 젊은 엄마들을 위해 공공도서관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도서관은 물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이라는 장점 외에도 개방성과 포괄성이라는 원칙을 가진 전문 직원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그러한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적 응집성을 갖고 있다. 도서관은 모든 연령, 모든 민족, 모든 집단에게 최대한 폭넓은 문화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그들이 처한 삶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가는 또한 도시의 공터와 버려진 건물들을 활용하여 텃밭과 녹지공간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도시 공터의 텃밭에서 생산되는 신선식품은 지역민들의 건강을 향상시키며 텃밭을 함께 가꾸고 돌보는 일을 통해 도시민들은 서로 결속하게 된다. 

저자는 사회학자로 도시의 인프라라고 불리는 곳들이 도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촉진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 분리의 심화 속에서 집단 내 유대 관계는 강화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량적 사회자본’이 약화된다며 연결망의 역할을 하게 될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열성적으로 추진하는 생활SOC 확충과 맥락이 닿아있는 사회적 인프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하늘의 선을 닮은 삶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의 뒷모습은 후배들에 의해 어떻게 평가될까. 마음속에 들끓는 분노와 시기심 같은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민음사(『무엇이 좋은 삶인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는 동서양 고전 인문학자가 만나 좋은 삶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책이다. 명예, 운명, 행복, 부 등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들에 대해 동서양 고전 지식을 바탕으로 번갈아 썼다.

먼저 정명. ‘이름값을 바로 잡는다’는 뜻의 정명은 삶의 실제와 그 이름이 부합돼야 한다는 요구로 임금은 임금이란 이름값에,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행위 함을 이른다. 사람이 저마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호명하는지, 또 자기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한 후 그 이름값을 온전히 치르면 명실이 상부해져, 그 이름이 참되게 칭해진다. 

하늘의 빛을 발하는 자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하늘도 그를 돕는다고 했다. 장자는 그러한 이를 가리켜 ‘하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를 노자의 표현으로 바꾸면 하늘의 빛을 따르는 사람으로, 일상을 살아가며 그 빛의 발함을 막는 갖은 욕망과 허위를 비워낼 줄 아는 사람이다. 정성되고자 함은 하늘의 선을 닮는다는 것, 곧 선해진다는 것이기에 물질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행복의 원인이 된다. ‘아름다운 선택은 무엇인가?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쪽인가?’ 맵시를 자랑하는 멋쟁이들의 미학적 욕구에서부터 이익을 위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결단, 그리고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는 정의롭고 숭고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마음에서 피가 흐를 때 가까이 놓아두고 읽으면 편안해질 것 같은 책이다. 


신남희_서울 중랑구립도서관 대표관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이상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