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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29. 2022

이상한 하루

탈출한 물고기들이 펼치는 엉뚱한 상상

"쳇, 다른 뻐꾸기가 먼저 선수를 쳤군."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볼 수 있는 걸까요?
둥지에서도 빼꼼히 보이네요.
숨바꼭질하듯 물고기들을 만나는 오늘은 이상한 하루입니다.



이상한 하루 

연수 글·그림 / 36쪽 / 13,000원 / 비룡소



“말도 안 돼. 제가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두 귀를 의심했었다. 황금도깨비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나는 구름 위로 힘껏 날아오른 활어가 되었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들뜬 마음에 날아다니기보단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묵묵히 다음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책을 보면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들은 원래 여기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자리매김을 한다. 이처럼 익숙한 장면에서 엉뚱한 무언가를 추가해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 조합은 낯설면서도 어울리는 이중적인 감정을 들게 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 ‘바다와 육지’이다.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두 공간은 나에게 신비롭게 다가온다. 


『이상한 하루』가 출간되기 전에도 바다와 육지의 조형물을 활용해 다양한 주제로 그림을 그려왔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그리려는 사물 본연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채색 전 작업으로 외곽선을 얇은 펜으로 그린다. 이때의 과정을 굉장히 좋아한다. 얇은 선으로 오밀조밀하게 면을 채울 때만큼은 아무런 고민 없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나만의 힐링 시간이다. 이를 막힘없이 즐기기 위해 사전에 구성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사전 자료 이미지를 굉장히 많이 찾아보는데, 인터넷 검색창에 물고기 이름을 한글로 검색하면 살아있는 물고기 사진이 별로 없어 애를 먹는다. 그래서 『이상한 하루』를 작업할 때는 한동안 퇴근 후 동네 횟집들을 들려 수족관 물고기들을 짬짬이 관찰하고 들어갔던 추억이 있다. 


그렇게 그리다 보니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습관처럼 혹은 무의식적으로 평범한 일상에 엉뚱한 질문을 더하게 되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거기에 상상을 더하니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어느 가을날 “올해 가을에도 돌아온 전어!” 문구와 함께 전어가 담긴 수족관을 보게 되었다. 

‘이러려고 돌아온 건 아닐 텐데…’라는 측은한 생각이 지나가고 자유롭게 헤엄쳐가는 전어 떼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인터넷에서 바닷속 전어 사진을 찾으려 했다. 놀랍게도 대부분 구워진 전어, 썰린 전어, 갇힌 전어밖에 나오지 않았다. 불쌍한 전어들. 

그때 내 방식대로 전어를 기르기 위해 바다는 아니더라도 해초 같은 갈대숲 위, 하늘을 나는 전어를 그린 적이 있다. 그 뒤부터 길을 걷다 수족관이 보이면 물고기들이 눈에 밟혔다. 보면 볼수록 관심이 생겼다. 푸른 수족관을 밖에서 바라보던 나는 

‘저 물고기는 자기가 사는 세상이 푸르게 보인다는 걸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겨나고, 

‘내가 사는 세상을 저 물고기들이 본다면 이곳은 무슨 색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들이 점차 다듬어졌다. 이는 첫 더미북인 ‘수족관을 탈출한 물고기’가 되었고 지금의 『이상한 하루』로 완성되었다.


첫 스케치에서는 횟집 아저씨가 물고기들을 찾아다니며 결국은 잡혀 들어가는 스토리를 연상했으나, 책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다 보니 ‘상상’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상상의 틈을 만들기 위해 스토리를 몇 번이나 바꾸고 글을 계속해서 덜어냈었다. 반대로 글을 덜어낸 만큼 그림은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 책을 오래 붙잡을 수 있도록 밀도를 올렸다. 손에 오래 남아야 여운이 생기고, 책을 덮어도 상상이 계속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독자마다 다양한 상상이 가미되어 이 그림책의 해석과 서평도 다양하다. 여기선 모두가 정답이다. 어떤 초등학생 독자는 ‘세상에 이런’ 횟집이 사실 숨겨진 맛집이라 전날 모든 물고기가 요리가 되어 이미 유령이 되었다고 한다. 하늘나라로 가는 순간, 잠시 소풍을 떠난 이야기라고 해 나를 놀라게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바다에서 갓 잡힌 물고기들이 여기가 육지인지도 모른 채 수족관 밖으로 나와, 원래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빨리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떤 이는 물고기들의 숨바꼭질에 초점을 두고 다른 이는 비상에 의미를 두기도 하는데, 나는 ‘탈출’에 좀더 의미를 둔다.



탈출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작지만 큰 마음가짐이 내 세상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물고기뿐 아니라 아직 갇힌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보탰으면 하는 마음이다.



연수 작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림책 디자이너로 살다가 이 그림책을 시작으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들여다보면 평범하지만 자세히 보면 색다른 그림책을 쓰고 그립니다. 『이상한 하루』로 2019년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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