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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28. 2022

하나의 작품이 된 누군가의 이야기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글 지음 / 320쪽 / 15,000원 / 프시케의숲



“자기 삶의 장막을 열어 보인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일단 용기를 내기만 하면 진귀한 경험이 다가올 것이다.”


책방 단골손님 중에 연극배우가 있어서 그를 통해 ‘플레이백 시어터’를 처음으로 접했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사람들이 삶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화를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극화하는 즉흥 연극의 한 형식이다. 사람들은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연극을 통해 그 이야기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윤성근 작가의 『헌책방 기담 수집가』를 읽으며 방식은 다르지만, 이 또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 시도라 생각했다. 어쩌면 처음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문을 두드리고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절판된 책을 찾아달라고 문의했던 손님은 그저 책을 구하는 게 목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디 그렇게 생각대로만 흐르던가. 하필 그 의뢰를 받은 이가 당시 직원이었던 윤성근 작가였고, 반년이 지나 운명처럼 나타난 1963년 초판본을 전달하며 전율을 느낀 그가 나중에 본인의 책방을 차린 후에 책에 관한 사연을 수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름 없는 개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로 소리 없이 사라질 뻔한 수많은 기담이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청춘의 따뜻했던 시절을 담은 책도 있고, 인생을 엉키게 했다가 실타래가 되어준 책도 있고, 불행한 한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책도 있다. 읽는 내내 ‘와, 이럴 수가 있나’ 하는 말을 입에 달게 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이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가득 채워져 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오히려, 이 책에 실리지 않은 그 수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계속 쌓여가고 있을 그 마법 같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도 더욱 커졌다. 


이 책은 단순히 기담을 모아 엮은 모음집으로 그 역할을 한정하지 않는다. 손님이 들려주는 힌트를 듣고 책을 추리해야 하기에 일종의 탐정이기도 하고, 양쪽 모두의 사연을 아는 중재자로서 능숙하게 둘을 연결하는 상담가이기도 하다. 때로는 손님과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의심스러운 손님을 관찰하며 살피기도 한다. 매회 등장하는 사연을 보는 재미만큼이나 손님과 대거리를 하는 책방 주인의 입체적인 캐릭터를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심야식당』의 마스터의 모습을 봤다면 조금 오버일까.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 2,000여 개의 크고 작은 책방들이 오늘도 문을 열고 손님을 받고 책을 판다. 그중 몇 곳이나 이렇게 독자들과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을까. 독자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책을 얼마나 잘 파느냐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책과 관련해서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혹은 수집할 수 있느냐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을까. 당장 내가 운영하는 서점에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당신이 가진 책에 관한 사연은 무엇인가요?


박용희_작가, 용서점 책방지기,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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