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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01. 2022

코로나 이후, 지속가능한 여행을 모색하다

책의 시선들 - 주제가 있는 큐레이션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 여행이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모 항공사의 광고 카피는 이렇게 시작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두 번째 여름, 우리는 이제 잃어버린 일상의 회복을 기대하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시 여행을 꿈꾼다. 코로나가 종결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답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 얼마나 여행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SNS에 과거 여행의 추억을 담은 사진이 올라오거나 여행지를 검색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도, 여행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여행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무착륙 여행’ 등 대체 상품에 사람이 몰린 것도 같은 이유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행에 대한 불안은 잠재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이전과는 달라야 하며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다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코로나 직후 주춤했던 여행서도 차츰 여행의 추억을 담는 방식이나 여행의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다루며 출간이 이어진다. 이번 호에는 ‘코로나 이후 여행’을 주제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여행’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을 멈추는 대신 방식을 바꾼다

2018년, 네이처 자연기후변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여행이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비행기를 이용한 이동이 급증했고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해 기후 위기를 앞당긴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그 심각성을 일찌감치 인지해 ‘비행기를 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뜻의 ‘flygskam’ ‘flight shame’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관광지마다 쌓여가는 일회용품과 각종 쓰레기도 문제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의 원인이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여행을 멈추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대해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의 저자이며 ‘지속가능한 여행 전문가’인 홀리 터펜은 ‘여행을 멈추는 대신, 방식을 바꾸라’고 제안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여행할 수 있는 방법과 ‘느린 여행’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행자의 선한 영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책임 여행’ ‘지속가능한 여행’을 제안한다. 책에서 제시한 여행법을 몇 가지 소개하면 우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조건 비행기를 적게 타고, 여행의 횟수도 절대적으로 줄이자는 것. 이를 위해 되도록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권한다. 또한 인스타그램 등 SNS 피드에 자주 올라오는 ‘인생 여행지’들은 매년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다며 되도록 덜 알려진 곳을 찾아 여행하라고 제안한다. 숙소를 선택할 때도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와 물을 절약하는 운영 방식을 택한 친환경 숙소를 선택하며 여행 기간 동안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라고 권한다.

ⓒ한스미디어(『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현실을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여행을 떠난 한 가족이 있다. 야나와 옌스 부부 그리고 그들의 네 자녀가 앞으로 살아갈 기후 위기의 현실과 위기에서 지구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을 직접 방문하고 자세히 기록해 『세계의 내일』라는 책에 담았다. 이들 가족이 여행하며 만난 기후 위기의 현장에는 생활 속에서 기후 위기를 몸소 체험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집집마다 썰매 개를 키우는 그린란드와 유럽의 날씨가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주는 아이슬란드, 순록과 함께하는 북유럽의 라플란드, 식물과 동물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생생한 생물군을 만날 수 있는 남아프리카, 농부들이 점점 넓어지는 마른땅에서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는 호주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기후 위기 현장에서 만난 지구는 역설적으로 이들 가족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책 속 가족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암울한 기후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연철학자 로버트 마이클 파일은 『네이처 매트릭스』에 자연을 주제로 한 14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그는 자연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건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지만 자연을 소비하는 방식의 접근법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 속에서 자연과의 접촉이 줄어든다는 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험의 멸종’이 가속화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일상에서 환경 윤리 의식을 높이려면 자연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을 찾아 멀리 떠나는 여행도 의미 있지만, 황야에 깔린 작은 도로, 아스팔트 틈 사이에 자란 잡초, 가로등 아래 모여든 나방 떼, 교각에 자라난 이끼처럼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을 느끼고 교감하는 데서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이 세 권의 책에 더해 19세기에 일어난 가장 혁명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철도의 탄생과 변화의 역사를 다룬 『철도 여행의 역사』와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스위스의 빙하 특급 열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선을 달리는 영국의 자코바이트, 눈부신 오로라를 만나는 북극권 열차, 안데스산맥을 가로지르며 마추픽추 유적지로 향하는 페루 열차까지 세계 곳곳을 가로지르는 여러 나라의 특별한 철도 노선과 기차를 소개하며 우리를 눈부신 기차 여행의 세계로 안내하는 『기차 타고 세계여행』을 더한다면 기후 위기 시대 여행 수단에 대한 대안을 좀더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극곰(『기차 타고 세계 여행』)


새로운 여행의 키워드, 오지와 소도시로 가깝고 안전하게

안전하고 만족도 높은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앞으로의 여행은 유명 관광지보다 집에서 가까우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나 오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같은 문화적인 장소를 잘 아는 이들과 소규모로 떠나는 흐름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와 함께 코로나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등산, 캠핑같이 자연 속에서의 활동을 즐기려는 이들도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이런 흐름을 담은 여행서 가운데 대표적인 책이 『아틀라스 옵스큐라』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기이하고 매혹적인 700곳 이상의 장소와 그곳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들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죽일 수 있는 식물 100여 종을 보유한 잉글랜드의 ‘독 정원’, 15명이 들어가 다트와 생맥주를 즐길 수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거대한 바오밥나무’ 등이 그것. 당장 떠날 수는 없어도 기이한 장소가 담긴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안겨준다.


평소 자연을 좋아해 “언젠가 꼭 나만의 여행을 떠나리라” 꿈꾸지만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도시의 생활에 찌들어 점점 자연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토르비에른 에켈룬의 『숲에서 1년』을 펼쳐보면 좋겠다. 자연을 좋아하는 저널리스트가 한 달에 하루씩, 1년간 숲에서 지낸 숲속 생활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다.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별을 보며 잠이 들기도 하고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기도 하며, 예상치 못한 날씨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자연 속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아름다운 산문으로 풀어냈다.


여행을 생각하면 교통수단부터 떠올리지만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은 걷기에서 시작되고 걷기로 완결된다. 걸으면서 우리는 생각하고 느린 속도로 주변을 돌아보며 교통수단을 통해서 하는 관광과는 달리 온몸으로 더 많은 것을 체험한다. 수많은 여행서들은 누군가 여행지를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기록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걷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나가서 걸어보자! 숨도 좀 쉬고!”라는 생각으로 어느 날 우연히 시작한 여행이 있다. 그렇게 단순하게 시작한 여행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2,000킬로미터를 100일 동안 걷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펙터클한 여행기를 기대했다면 김이 빠질 수도 있다. 여행은 사전에 철저한 계획도 어디까지 가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다. 오직 자신의 발소리만을 들으며 숲과 들판을 걸어간 여행을 통해 『걷기를 생각하는 걷기』의 저자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독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어서 나가 걸어보라고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몸을 움직여보라고. 그러면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걷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맘껏 뛰놀던 어린 시절 이후로 잊고 있었던 몸의 감각들을 새롭게 일깨워줄 거라고 말이다.


코로나로 사라진 것은 여행만이 아니다. 지역의 특색을 담아 여행객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지역 축제 또한 실종된 지 오래다. 여기에는 천편일률적인 먹거리 축제라는 오명이 붙은 우리의 축제 문화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다시 축제가 열리면 이들의 행로를 따라 축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축제 탐방기를 한 권에 담은 『전국축제자랑』. ‘의좋은형제축제’ ‘품바축제’ ‘젓가락페스티벌’ ‘산청곶감축제’ 등 전국의 지역 축제는 좀 다녀봤다는 분들마저 생소한 축제를 김혼비, 박태하 작가가 맛깔스럽게 풀어놨다.


코로나로 인한 제약은 있지만 여행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잠재돼 있음이 확인되었다. 지루하고 갑갑한 일상이 기약 없이 반복되면서 누구나 ‘일상 탈출과 휴식’에 대한 욕구가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독자의 욕구를 읽어내고 책으로나마 새롭고 독특한 여행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켜주고 코로나 이후 여행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책방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여기 소개된 책 이외에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문학작품과 여행책을 더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며 연재를 마무리한다.


이용주_우분투북스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1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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