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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04. 2022

새로운 마음으로 읽기

책의 시선들 - 주제가 있는 큐레이션 1

‘몸’이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지난 연말 건강검진을 하며 문진표에 답을 하는데 “일주일에 운동을 몇 번이나 합니까?”란 질문에서 주 5회 이상에 체크하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운동을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할까 말까 하던, 그래서 건강검진을 앞두고선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던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꾸준히 운동을 해온 지 벌써 10개월 가까이 되었으니, 이제는 누가 묻더라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건강 때문에 혹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가 아니라 심지어는 진심으로 운동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좋아하게 되기까지 했다. 몸이 아플 때조차 가장 먼저 ‘운동 못하겠네’란 생각이 들 정도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로, 내가 이런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 데에는 다른 누구보다 하루키의 공이 크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하면서 겪은 심신의 변화에 대해 쓴 책이다. 대학 졸업 후 바를 운영하며 불규칙적으로 생활하던 하루키는 투고한 소설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체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결국 하루키는 담배는 끊고 술은 줄인 뒤 식이를 조절하고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운동은 단순히 신체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고만 여겼던 나는 하루키의 글을 읽은 뒤 규칙적인 운동과 일정한 루틴을 만들어 그것을 지키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작가로서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무척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10개월간 실제로 운동을 해본 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적절한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이처럼 하루키는 운동에 관한 글을 통해 본인뿐 아니라 나와 같은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다. 운동 좀 하라는 말이 지긋지긋한 잔소리로 느껴질 사람들은 고작 책 한 권으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아마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일단 한 번 읽어보시라고. 당장 신발을 신고 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


‘나’를 만나는 시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정말 대단하세요. 저도 책 좀 읽어야 할 텐데 도저히 짬이 안 나네요”와 같은 죄책감 어린 고백을 종종 듣는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는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책읽기에 부담을 느낄수록 결과적으로는 책에서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므로. 책읽기만큼 재미있는 활동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분명 “작가님한테나 재미있겠죠!”란 반응이 돌아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활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책 한 권으로 기쁨, 슬픔, 분노, 즐거움 등 온갖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는데,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사실 독서가 정말로 좋고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나’ 스스로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다. 영화나 운동, 요리 등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활동과 다르게 독서는 절대적으로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행위다. 오디오북을 듣거나 독서모임 등에서 다 같이 읽어나갈 때조차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읽기는 철저히 고립된 시간일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러한 이유로 도움이 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치유를 받는 경우도 종종 생기는 듯하다.


김정선의 『세계 문학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역시 이러한 과정의 기록이다. 30년 가까이 교정 교열 편집자로 일한 작가는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꿈꿔온 작업에 착수한다. 바로 세계문학 전집을 읽는 일. 그는 9개월간 1백 권의 고전을 읽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오르락내리락 들끓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책읽기가 일종의 도전이자 치유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장을 덮고 나면 영 지루하고 어렵기만 할 것 같아 기피 대상이던 세계문학 전집을 괜스레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

책읽기만큼 자주 질문을 받는 분야가 다름 아닌 글쓰기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종종 놀란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아닌 정말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이들과 교감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싶은 욕구를 지니며 이를 위해서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말하기’의 함정은 반드시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고로 무언가 절실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어떤 절박한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혹은 엄청나게 기쁜 일이 생겨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을 홀로 삭히는 수밖에 없다. 

반면 글쓰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 물론 완성된 글은 독자를 필요로 하지만 일단 그 글을 쓴 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독자가 갖추어진 셈이다. 고로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글쓰기가 가장 기본적인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 흥미를 갖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소망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글쓰기가 생각과 다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골프 치는 법이나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 배울 수 없듯이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시중에 수많은 글쓰기 책이 나와 있지만 아무리 많이 읽어봤자 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글쓰기란 결국 자신의 몸으로 직접 써나가며 익혀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조금 특별한 글쓰기 책이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글쓰기가 몸으로 배우는 작업인 만큼, 이 책에서 저자는 ‘어떻게’ 쓰는지보다 자신이 ‘왜’ 쓰는지에 더욱 집중한다. 글쓰기가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왔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성실한 글쓰기로 손수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저자가 운영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이후 직접 책을 낸 사람들이 나온 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다. 

ⓒ문예출판사(『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중독에서 벗어나기 

술을 좋아한다. 본격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어째 처음이지 싶다. 그렇다고 술자리나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술을 마신 후 적당히 취기가 올라 신경이 마비된 듯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술 자체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시는 나이지만 솔직히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진 못했다. 어디선가 홀로 마시는 혼술, 특히 규칙적인 음주가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도 코웃음을 쳤다. 폭음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술자리를 떠도느라 생활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사고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과 끝나고 한두 잔씩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그래? 

하지만 어느 순간 일과 후 한잔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깨닫게 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어느 날인가는 정오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괜찮다가 그날 저녁 바로 한잔 마시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을 느끼면서 조금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은 그런 순간에 찾아 읽었던 책이다. 몇 해 전 『명랑한 은둔자』를 인상 깊게 읽은 뒤 저자인 냅이 심각한 알코올중독으로 오랜 세월 고통받다가 마침내 알코올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은 냅이 술에 중독된 이야기, 거기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게 된 계기와 직접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지난한 과정을 담고 있다. 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온갖 ‘중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단순히 중독을 벗어날 방법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왜’ 중독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어째서 위험한 것들은 이토록 매혹적인가에 대해서도. 부디 하나의 중독에서라도 벗어나고 싶다.



한승혜_작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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