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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l 06. 2022

25년, 그림책 예술의 길

그림책 작가 깊이 만나기

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 지음 / 344쪽 / 16,000원 / 돌베개



권윤덕이라는 이름 속에는 『꽃할머니』가 들어있다. 내겐 언제부턴가 권윤덕은 꽃할머니다. 꽃할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만큼 길었고 아프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의 권윤덕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떤 조건에서도 집요하게 상황을 끌고 가는 사람이다. 방대한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노트 가득 빽빽이 기록하고, 발품을 팔아 몇 번씩이나 현장을 찾아다니며 할 수 있는 노력의 최대치에 닿아야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꽃할머니』와 『나무 도장』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역사 이야기를 하는 까닭에 그런 것인가도 싶었다. 하지만 25년 동안 작업했던 열 권의 그림책 이야기를 담은 『나의 작은 화판』을 읽으며 작가의 손을 거친 책 열 권이 모두 그렇게 수많은 수고와 고민으로 우리 곁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열 개의 화판은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해 스스로 온전한 제 모습을 찾았을 때 우리에게 이야기로 왔다. 작가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진 슬픔을 여러 권의 더미북을 통해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서야 우리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독자들은 그 아름다움을 마주하면서 자기 마음속의 이야기로 제각각의 슬픔을 길어 올릴 것이다.


권윤덕 작가는 이처럼 길어 올린 각자의 슬픔이 나의 이해로, 타인으로의 공감과 수용으로, 그리고 역사적 맥락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아픈 이야기를 쓰게 하는 힘이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만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에겐 코로나로 인해 굽어진 허리를 펴게 하는 말이었다. 


화판에 무엇을 담아 어떻게 그려갈지 저마다 다르지만, 수없이 많은 탐색 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대부분이 삐뚤고 망친 선투성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서문의 끝맺음은 독자들을 저마다의 화판 앞에 서게 하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나의 작은 화판』은 알이 꽉 찬 노란 옥수수 열 자루를 받아든 기분이었다. 열 자루를 한 알도 빠짐없이 맛나게 먹었더니 나의 노란 옥수수가 심고 싶어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켜켜이 개어진 내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나만의 화판에 담아놓고 마주 봐야겠다. 

그리고 토닥거려 줄 것이다. 

괜찮다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흑백으로 그려진 드로잉은 출간된 그림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림이고, 그림책 너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책에 실리지 않고 남겨진 고민을 엿볼 수 있어 작가와 수다를 떠는 듯 좋았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도 요란스럽지 않고 세련됨이 돋보이는 디자인, 앞뒤 면지의 풍성함, 편안하게 읽히는 타이포와 보기 좋은 편집. 책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몫만이 아님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나의 화판 앞에 섰다. 망설이지 않고 그려볼 참이다. 


황진희_그림책 번역가, 『숲으로 읽는 그림책테라피』 공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0년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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