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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Aug 01. 2022

바다를 끌어안은 사람들

엄마의 섬

이진 글 / 한병호 그림 / 38쪽 / 15,000원 / 보림



부산 아미동에서 태어나 자갈치시장을 들락거리고, 여름이면 근처 송도해수욕장이나 조금 멀리 다대포해수욕장에 놀러 갔습니다. 광안리로 이사 온 후, 중학생 땐 태풍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갔습니다. 두려움 없이 달려와 방파제에 거침없이 부서지는 파도가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거든요. 지금은 해운대에 살고 있습니다. 광안리든 해운대든 많이 변해서 어린 시절의 느낌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화려하게 변한 바다 주변의 풍경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바다는 고향 그 자체입니다. 


여기 바다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습니다. 노란 하늘에 머물러있는 배는 다시 돌아갈 바다를 꿈꾸는 것 같습니다. 어둠에 묻혀있던 바다 위로 햇살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햇살은 잠든 섬을 깨우고 소리를 부릅니다. 삶이 시작됩니다. 

“부우우웅 뱃고동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덜컹덜컹 손수레 소리, 촤르르 털털 얼음공장 소리” 

섬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의 움직임도 깨어납니다. 보리밭이 바람에 춤추는 소리와 친구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몽돌의 똘똘똘 노랫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러다 바다에 별이 내려앉으면 엄마의 섬은 잠이 듭니다. 모든 소리가 잦아든 그 시간, ‘나’를 위해 불러주는 엄마의 자장가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엄마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물고기를 타고 날아다니는 꿈을 꿉니다. 아니, 어쩌면 엄마의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날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리가 가득한 책이지만 조용합니다. 삶의 분주함과 고단함이 있지만 편안하고 잔잔합니다. 원색이 출렁거렸을 바다와 삶의 모습을 부드러운 색감으로 끌어안습니다. 바다의 푸름과 보리밭의 푸름은 다르지만 닮았습니다. 비 오는 날의 회색은 어둡지 않고, 한낮의 나른함은 노랑으로 선명합니다. 그림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의 덩어리로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글작가의 이력이 눈길을 끕니다. 어린 시절의 섬 생활을 잊지 못해 다시 섬사람이 되어 그림책 책방의 주인이 되었다니. 이 책은 ‘엄마의 섬’인 동시에 ‘나의 섬’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책방을 운영하는 저로서는 반가움이 더합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습니다. 


남해의 한 작은 섬에 자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육지의 바다는 내가 바다에 등을 돌리면 외면할 수 있지만 섬의 바다는 어찌할 수 없는, 내가 끌어안아야 하는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등을 돌려도 내 눈앞에 보이고 눈을 감아도 소리로 들리는 섬의 바다는 운명처럼 느껴지며 더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작가의 그리움이 더욱 깊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서핑의 성지가 되어버린 송정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서퍼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파도를 넘기 위해, 아니 파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립니다. 매 순간의 파도에 집중하며 파도와 하나 되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태도를 배웁니다. 바다를 운명처럼 끌어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안부 인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파도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잘 계시느냐고 인사 나누고 싶습니다.


김윤진_부산 책방봄봄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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