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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24. 2022

책방에 간 까마귀

동네책방을 사랑한 작가 - ‘터무니책방 X 조오 작가’

터무니책방을 꾸려온 지도 어언 2년. 아직도 한참 어설프지만 100권도 안 되는 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제법 서점 꼴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책방지기 대표 엄선 작가님과는 작가 공동체 힐스에서 선후배로 알게 되었는데 힐스 수료 후 작가님의 제안으로 함께 책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작가 겸 예술기획자 엄선, 시각예술가 현진, 그림책작가 조오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들과 협업하며 책방을 꾸려나가고 있어요. 

거의 백수인 상태에서 그림책만 준비하다가 책방 일까지 하게 되니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책 만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보면 꿈 하나를 이미 이룬 걸까요? 책방을 운영하는 작가라니… 꽤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여전히 책방 매니저 조이와 그림 그리는 조오, 두 개의 부캐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답니다. 


요즘 시대에 책방이라니 

터무니책방은 5년 전 군포에 터를 잡았던 공감문화기획사 밸류브릿지에 뿌리를 둔 책 공간입니다. 책방의 공간은 모래알처럼 수많은 책들 중 나만의 소중한 책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서가 ‘작은 사막’, 책방지기들이 자부하는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공간 ‘오하이시스’, 흥미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는 갤러리 ‘달의 위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죠. 최근엔 서울 개포동에 있는 카페 송커피 지하공간에 소규모로 입점하게 되어 뜻밖의 분점까지 함께 일궈나가고 있습니다. 유수의 베테랑 책방들에 비하면 아직 만 두 살도 되지 않은 새내기 책방이라 당분간은 버티는 게 일이지만요. 

책방 서가 ‘작은 사막  ⓒ터무니책방

2020년 초 책방 준비를 시작하며 우리가 벌이려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고민과 망설임은 늘 꼬리표처럼 우리를 따라다녔고, 책방 벽에 붙어있는 말마따나 요즘 시대에 책방이라니 참 터무니없는 일이었죠. 한때 거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종이책을 나란히 꽂아두고 소개하는 게 맞는 일인지. 

부자가 되려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와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조금 특이하게도 저희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해서 두 가지 입장으로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죠. 그리고 돈머리라곤 없는 작가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기껏 생각해낸 것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책방이 되고 싶다’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목표였어요. 작가로서 독립출판을 체험해보며 느낀 즐거움과 아쉬움, 서러움과 기쁨을 하나씩 떠올리며 작가가 좋아하는, 함께하고 싶어지는, 작가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책방이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동네 사람들~ 이 책 좀 봐주세요! 

아끼고 좋아하는 대상이 생겼을 때 동네방네 소문내고 자랑하고 싶어지는 마음. 저만 그런가요? 터무니책방이 소개하는 책들은 그런 마음이 드는 책들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시, 소설, 에세이 등의 글 책과 그림, 사진, 디자인 등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표현된 책을 소개하는 책방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큐레이션 기준은 장르 불문하고 책방지기들이 소개하고 싶어지는 책! 단순히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작가, 핫이슈를 다룬 책보다도 자꾸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여 “여러분 이것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책들이죠. 무엇보다도 조금 어설프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개성 있게 드러내는 책들을 가장 좋아합니다. 대체 이런 책을 만든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하며 작가가 궁금해지는 책들 말이에요. 가끔 제작자나 공급사의 사정으로 데려오고 싶은 책들을 다 입고하지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작당이 눈에 띄면 열심히 연락을 시도합니다.

다양하고 많은 책을 소개하지 못하는 대신 한번 터무니에 발을 들인 책은 한 번씩 다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책 소개 카드’. 책방지기들이 직접 책을 읽어보면서 맘에 와닿는 문장을 고르고 이 책엔 무엇이 담겼는지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이 담긴 카드입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지켜가는 책방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창작자와 감상자의 경계 허물기 

책방을 하다 보니 종종 독서모임을 하는지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저희는 ‘책을 잘 소비하기 위해선 우선 직접 창작자가 되어보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그리고 쓰고 만들어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책들이 달리 보이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주로 드로잉 모임과 책 만들기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방으로 올라오는 계단 벽에 있는 작은 벽 셋방. 단기 입주 레지던시처럼 수시로 자신의 드로잉을 전시할 수 있는 벽을 제공하는 ‘드로잉월세방세입자클럽’입니다. 매달 그림 180장을 그려내야 하는, 단기간에 자신의 드로잉을 양적으로 실험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커뮤니티입니다. 또 엄선 작가님이 진행하는 ‘터무니없이 책 만들기 워크숍’에선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묵혀두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볼 수 있죠. 창작의 시간이 필요하신 분들은 책방 인스타그램을 주시해주세요. 

’터무니없이 책 만들기’ 전시

터무니없는 사람들의 터무니가 되기 

멋진 책방들의 문을 두드리던 입장에서 직접 찾아오는 책들을 고르는 입장이 되어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더욱 어렵기도 합니다. 창작자의 마음을 아니 함부로 제안하기도 거절하기도 쉽지 않은 일, 종종 입고 문제로 곤란한 일이 생기기도 하죠. 그래도 신선하고 엉뚱한 작품이나 작가의 생각과 마음이 오롯이 담긴 창작물을 보면 자극도 되고 매우 기쁘답니다. 세상에 이렇게나 멋진 것이 많다니! 

공간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되어도 모든 입고 서적을 전면 전시하는 것은 책방이 그런 창작자들의 갤러리 역할을 해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면 갤러리에 전시를 하듯이 책들의 전시장은 책방이 아닐까요? 누군가의 노력이 배어든 결과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터무니는 작은 무대를 마련합니다. 앞으로도 쭉, 남들이 뭐라 하든 터무니없는 일들을 벌이는 모든 창작자들을 위해서 말이에요.

조오_작가, 『나의 구석』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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