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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26. 2022

내가 책방에서 하고 싶은 일

동네책방을 사랑한 작가 - ‘그림책방 넉점반X김영미 작가’

난 평생 어린이책을 읽는 시민단체와 모임에서 책을 나누며 살았다. 그때 나눈 책 이야기로 강의도 하고 글도 쓰며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때 같이 책을 읽으며 삶을 나누던 책 동무들은 여전히 나의 큰 힘이다. 운이 참 좋았다. 그리고 이제 책방이다. 나는 동네 작은 골목길 모퉁이에서 그림책방을 시작했다. 


동네에 그림책방이 생기자 동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그림책방도 낯선데 ‘넉점반’이라는 책방 이름은 더더욱 모르겠다는 얼굴들이다. 그러니까 난 그림책도 그림책방도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그림책방을 시작했다. 그림책이 좋아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과의 책 이야기도 좋겠지만 그림책이 익숙하지 않은 동네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을 나누고 싶었다. 작은 터를 마련하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고민 중에 내 오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내 걱정을 듣더니 환호를 했다. 무조건 찬성이란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어린이도서연구회 그 높은 사무실 계단을 오르던 모습이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손자에게 좋은 책을 알려주려 어린이책을 연구하는 시민 단체에 왔다가 25년이 흐른 사이 그는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그 도서관에서 전국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새로운 어린이책 문화를 만들더니 몇 년 전에는 책을 냈다. 친구가 여든 둘에 『어린이책으로 배운 인생』이라는 첫 책을 냈을 때 고작 쉰이 넘은 우리는 여든 둘은 아직 멀었으니 더 놀다 책을 쓰자며 여유로웠다. 친구의 지난 25년이 나에게도 선물처럼 다가왔고 난 안심하고 책방을 시작했다. 


책 이야기 나누는 곳

고등학교 때 내가 살던 동네 버스 종점에는 ‘지은서점’이 있었다. 해마다 늦가을이면 그해의 이상 문학상을 빨리 읽기 위해 몇 번씩 책방을 들락거렸고 그해의 수상 작가는 바로 나의 우상이 되었다.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서점에서 소설책 한 권을 사면서 손님과 책방주인만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책방에도 그런 손님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조용한 일요일 오후에 책방 문이 열리면 그녀가 분명했다. 그녀는 그림책 마니아답게 무엇보다 새로 나오는 그림책을 잘 알고 있다. 난 그녀가 재밌다고 소개하는 새로 나온 그림책은 얼른 주문한다. 그 옛날 지은서점과 반대로 손님에게 새 그림책 이야기를 듣는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 전부터 내가 아주 오래전 사랑했던 그림책을 묻기 시작했다. 옛날에 나온 레이먼드 브릭스의 그림책을 찾더니 어느 날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책을 다 읽었다며 린드그렌 이야기를 한다. 나도 반가워 유은실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이야기하고 아는 척을 한다. 


“동네 작은 책방에 가면 내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책방 주인이 그 책을 읽든 안 읽든 상관없어요. 책이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녀에게 책방은 책을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방 주인과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어느새 난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와 난 이렇게 한 달에 한 번쯤 책방에서 책을 나눈다. 내가 오래전 읽고 사랑했던 그림책과 동화책 그리고 그녀가 읽은 새로운 그림책 이야기를 말이다. 


사랑하는 작가의 전작 읽는 모임을 기약하며 

사실 책방의 시작은 내가 이제까지 읽어왔던 어린이책 때문이었다. 더 이상 집에는 책을 둘 곳이 없었다. 그 책들은 지나간 책이 아니라 언제든 읽으면 새로운 책이 된다. 특히 그림책이 그랬다. 내가 책방을 하게 된다면 그곳에 작은 방을 만들고 그 그림책을 모아두고 싶었다. 그 책방 속의 책방에 동네 아이들이 찾아와 신발을 벗고 올라가 몸도 마음도 가볍게 그림책을 읽게 말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책방에 오면 그곳으로 달려가 귀신같이 아는 그림책을 찾아낸다. 그들에게 책읽기는 아는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책방에서 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다. 


오래전 다른 나라의 독서문화 다큐를 본 일이 있다. 독일의 추운 겨울밤 퇴근 후 서점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괴테의 책을 읽는 모임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괴테 책 이야기를 하는 모임. 독일에는 이렇게 괴테 책을 읽는 모임이 하나둘이 아니란다. 일본 여행을 가서 놀라웠던 것도 미야자와 겐지 책 모임은 물론이고 그의 그림책 원화를 어느 서점에선가 항상 전시하고 있는 거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다. 우리 책방에서 사랑하는 작가의 전작을 읽는 모임, 그 작가의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는 책 모임 말이다. 


책방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재밌게 일하고 약간의 돈도 벌길 내심으론 바랐으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결코 손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을 팔 만큼(?) 팔아도 수익이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치도록 계산하지 않는 한 결코 책을 파는 일은 밥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겐 재미있는 일이 남았다.  


김영미_그림책방 넉점반 대표,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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