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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28. 2022

심심하지 않은 작은 산골 책방

동네책방을 사랑한 작가 - ‘심심한책방 X 신혜원 작가’

아주 오래된 바람이었습니다. 한적한 동네 모퉁이에 작업실에 딸린, 작은 그림책방 하나 열고 싶었습니다. 그림책이 가득하고 아이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책방, 세상 예쁜 것들이 구석구석 놓여있는 책방, 동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며 수다 떠는 책방, 그 책방을 지키는 깐깐한 할머니가 된 제 모습을 상상하면서 언젠가 바람을 꼭 이루리라 다짐하곤 했지요. 그저 꿈으로만 남을 줄 알았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2020년 5월 16일, 할머니가 되기엔 조금 적은 나이에 제가 사는 월악산 산골 마을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책방 모습은 상상보다 훨씬 소박하고 멋져 제 맘에 꼭 들었습니다.

2004년 산골로 이사 와 낡고 작고 오래된 오두막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2년 뒤 마당 한쪽에 20평 남짓한 작업실을 지었습니다. 처음 겪는 산골 생활은 신기하고 재밌었고, 가끔은 힘들고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세 엄마 이야기』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같은 그림책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5년… 10년… 15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책방을 열어도 될까요?

“책방을 내야겠어. 지금 당장!” 2019년 가을이었습니다. 제 결심을 들은 남편은 불안한 눈빛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조건과 상황이 아니란 거에 남편도 동의했습니다. 2016년 오두막집을 헐고 새 집을 지었습니다. 넓어진 집에서 어지간한 작업이 가능해지다 보니 작업실에 가는 일이 뜸해지더군요. 작업실 벽은 창을 뺀 나머지가 모두 책꽂이였습니다. 책방으로 당장 변신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새 집을 짓느라 그동안 모은 돈에 더해 빚까지 내야 했습니다. 산골 살림이야 적은 수입으로도 가능했지만 수입은 해가 갈수록 줄었습니다. 새로운 경제활동이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그리고 그림과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맘껏 소통하고 싶은 생각도 깊어졌습니다. 책방이 새로운 경제활동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조건과 상황이 맞고 오래된 바람까지 이룰 수 있는데 굳이 미룰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책방을 열어도 될까요?” 

오랜 동무인 일산의 ‘알모책방’ 책방지기님에게 물었습니다.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책방지기님에게도 물었습니다. ‘행복한아침독서’ 한상수 대표님에게도 물었습니다. 

“하세요!”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딱 한 가지 조건이 따라붙었는데 그마저도 같았습니다. 

“책을 정말 좋아하신다면!” 

청주 ‘초롱이네도서관’ 관장님이 취재 차 오셨기에 또 물었습니다. 그분의 대답이 마음의 불씨에 훅 바람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하세요!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든 굴러가더라고요.”


책방은 심심하지 않습니다

목수인 이웃이 진열장을 짜주고, 전기 기술이 있는 이웃이 전등을 달아주었습니다. 굴삭기를 가진 이웃이 간판 기둥을 세울 구덩이를 파주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책방을 여는 잔치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노래하는 동무들이 공연을 해준다고 나섰습니다. ‘어떻게든’이 아니라 ‘잘’ 굴러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한 달 두 달 기다려도 역병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더 미루지 않고 책방 문을 열었습니다. 잔치는 미뤘습니다.

과연 이 산골까지 책을 사러 오실까? 

과연 그림책으로 사람들과 행복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걱정과 달리 드문드문 마을 분들이 오시고 인터넷을 보고 멀리서 오시는 분들도 계셔서 놀랐습니다. 그분들과 그림책 이야기하는 시간은 늘 즐겁습니다. 어린이 손님들은 책방보다 마당과 닭장에 관심이 많아 기본 30분은 밖에서 놀고 나서야 책방을 둘러봅니다. 5~6월과 초여름까지는 딸기, 포리동(보리수 열매), 방울토마토가 지천이라 맛보며 즐거워합니다. 마당 곳곳을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보며 책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사이 마을 초중학교와 지역아동센터와 간디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 거의 모두가 번갈아 다녀갔습니다. 마을에 생긴 그림책방을 모두 반기며 책방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만 2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손님은 드문드문합니다만 책방은 심심하지 않습니다. 책방과 동시에 연 ‘그림교실(주 1회 진행)’을 최근 1개 반 더 늘렸습니다. 마을 분들의 신청이 많아서입니다. 이렇게 인기가 좋을지 몰랐습니다. 간디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수업 ‘마음산책’도 매주 책방에서 진행합니다. 방학 때는 동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책방에 모여 그림책으로 이야기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2년째인 어른들 그림책 모임 ‘산책’은 이제 각자 책 한 권씩 내는 걸 목표로 삼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주 한 주 바쁘게 돌아갑니다. 2021년엔 충주 ‘글터서점’, 괴산 ‘숲속작은책방’과 함께 작가회의 후원을 받아 달마다 ‘마을, 문학을 만나다’라는 행사도 열었습니다. 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한 남편은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내세워 ‘친절한 은홍씨와 책동무하기’라는 정기구독 회원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당 가이드 역할을 하며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남편 몫입니다.


이제 3년 차 책방지기가 됩니다. 앞서 책방을 연 선배 책방지기님들을 따라 조금씩 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작은 산골책방에 여러 사람들이 오가며 그림과 그림책으로 이야기하는 즐거운 시간들이 쌓이고 있고, 오래전 상상처럼 조만간 깐깐한 그림책방 할머니가 될 것 같습니다.


신혜원_심심한책방 대표,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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