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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작가의 1인극 공연 ‘그림.책.몸짓’

그림책과 예술

by 행복한독서

‘그림.책.몸짓’은 2013년에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 힐스(HILLS) 동인이었던 저와 작가들을 중심으로 어린이·청소년극 배우 겸 연출가인 유홍영 선생님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그림책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1인극 형태로, 그림책을 공연의 형태로 재창작하는 공연 워크숍입니다.

2013년도 시작과 함께 매년 1기수씩 진행했고 2017년에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과 KBBY의 지원으로 ‘북아웃 워크숍’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처음엔 힐스와 공공의 지원으로 진행했으나 현재 그림책상상학교에서 정규 워크숍 과정으로 만들어 작가들이 유료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워크숍을 함께했던 작가들은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켜 독자적인 활동과 1인 공연의 형태로 개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선희 작가, 마포중앙도서관 공연.jpg 박선희 작가, 마포중앙도서관 공연

독자들과 직접 만나 체험하는 자리

처음 시작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시 그림책은 많은 작가들과 출판사에 의해 여러 가지 주제와 다양한 제작 형태로 창작되며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어린이책 시장 활성화와 관심에 힘입어 다양한 전시와 기획도 일어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2000년대 이전의 우수한 외국 그림책 소개와 교육열에 기반한 장르의 인식, 시장 확대에 따른 혜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의도서관’ 운동의 시작으로 2010년대 각 지역 어린이도서관의 필요성과 문화 콘텐츠의 다양성이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출판 시장의 활성화와 어린이도서관 건립 등 대내외적인 여건이 좋아지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 그림책 창작은 아직 전집이나 교육 관련 판매에 따른 그림책 주제에 머물러있었고 몇몇 유명 작가 외에는 작품의 개념으로 그림책 창작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있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1997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 한국도 당당히 주빈국으로 참여하면서 국내외의 관심이 늘어났고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양한 젊은 그림책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림책 창작가들은 시장의 요구나 대외 수상 경력에 의존된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출판사가 주최하거나 유명 작가들에게만 주어지는 사인회와 강연회가 전부였습니다. 이것도 신인 작가나 예비 작가들에게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당시 도서관의 확대로 출판사를 통해 이름 있는 작가는 원화 전시 요청도 많아졌고, 실제 원화 손상의 문제로 고품질 복제본 그림 등의 전시로 작게나마 독자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울국제도서전, 파주출판단지 책 행사, 와우북페스티벌 등 출판사 마케팅을 중심으로 하는 기회는 있었지만 독립적으로 작가가 직접 독자를 만나는 자리를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김준영 작가, 마포중앙도서관 공연.jpg 김준영 작가, 마포중앙도서관 공연

다행히도 어린이도서관을 중심으로 그림책작가의 책읽기, 강연, 사인회, 전시 등이 조금씩 확대되었고 작가들도 단순 참여와 초청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직접 체험하는 방식의 체험활동을 기획하고 소통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체험활동도 경험 없던 작가들이 따로 기획하고 준비하기에는 단순한 미술 체험이나 책읽기 등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양한 연출과 표현으로 참여

이런 활동에서 좀더 다른 형태로 독자와의 소통을 기획하고 실험하게 되었는데 당시 어떤 형태일지는 막연했지만 작가가 직접 시연하는 책 공연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립극단에서 어린이극을 연구하던 유홍영 선생님을 만나 젊은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1인 연극의 형태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첫 발표는 국립극단 연습장에서 젊은 연극인들과 함께하는 국립극단 주최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의 작은 공연 축제였습니다. 그림책작가들은 전문 공연 기획과 연극인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작품을 테이블 인형극의 형태로 구성해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관람객의 반응은 작가 몸짓의 전문성보다는 작가가 직접 자신의 그림책을 공연 형태로 만들어 다양한 연출과 표현으로 진행한다는 것에 무척 흥미로워했고 이미 완결성 있는 그림책 형태였기 때문에 공연 연출의 완성도는 좋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완성도와 몰입은 좋았습니다.

첫 대외 공연을 통해 그림책작가들은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공연 연출의 완성도와 몸짓의 자연스러움, 관객의 몰입 등이 좋아지면서 매년 조금씩 관심을 갖는 새로운 작가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정해영 작가, 인형 제작 과정

입체물 형태로의 탈바꿈 과정

‘그림.책.몸짓’은 총 10강 정도의 공연 연습으로 구성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몸을 움직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몸동작과 발성 연습을 훈련합니다. 이 과정에서 손동작이나 몸동작 등의 언어들과 전달 방식을 배우게 되고 정확한 발성과 음성으로 자신의 그림책을 극의 형태로 변환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림책은 평면적인 구성이기 때문에 입체적인 구성을 위해 여러 가지 발상을 하게 됩니다. 인형이나 자신이 직접 탈을 쓰는 방식 그리고 책이 입체적으로 재구성되는 방식 등 작은 소품이나 제작 방식을 이용해 책의 형태에서 입체물의 형태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후 배경과 결합하거나 동작의 결합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갑니다. 음악을 추가로 사용하거나 효과음, 조명 등도 추가적으로 사용해 좀더 작은 무대의 형태로 집중될 수 있도록 합니다. 여러 요소와 작가의 발성을 통한 내레이션을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반복해 연습하고 수정을 거쳐 최종 리허설을 갖게 됩니다. 최종 리허설 이후 관객을 만나는 공연을 기획하고 현장을 찾아가 실제 공연을 할 때 많은 실수와 의도치 않는 문제가 발생하지만 이런 현장성의 시행착오와 반응을 거쳐 작가는 계속 자신의 극을 완성해갑니다.

첫 워크숍 작가였던 이유정 작가가 공연을 마치고 블로그에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연을 할 때 순간순간 웃음이 와르르 쏟아지고 등장인물들에게 장난스런 말대꾸를 하는 어린 관객들과 마주하며 정말 내 이야기를 나누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첫날 공연이 끝난 밤에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보통 첫 현장 공연을 할 때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은 현장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일들입니다. 대사를 까먹거나 준비한 음악이 말썽이거나 또는 입체물과 인형 등이 망가지거나 할 때입니다. 가끔 아이들이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공연 중에 앞으로 나와서 작가에게 직접 말을 걸 때도 있고 대놓고 재미없다거나 이미 내용을 알고 결론을 이야기할 때 등등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같이 공연에 몰입하면서 격려해주거나 반응해줄 때 많은 경험을 쌓게 되고 또 다음을 준비하게 됩니다.

이사랏 작가 송파위례도서관 공연.jpg 이사랏 작가 송파위례도서관 공연

소통과 감동 나누는 몸짓

‘그림.책.몸짓’은 작가가 그림책 독자를 직접 만나 그림책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소통입니다. 무엇보다 작가는 독자들에게서 많은 감동과 찬사를 받게 되고 그 에너지를 다음 작품에 반영하고 독자는 작가가 의도했던 그림책 속의 이야기를 느끼고 봅니다. 단순히 책 읽는 것과는 다른 경험입니다. 작가도 공연을 하며 일방적인 전달보다 많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그림책의 본질은 공감과 소통입니다. 현재 우리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전달합니다. 공연에 아이를 데리고 온 보호자들은 뒤에서 조용히 공연을 보면서 아이보다 더 감동합니다. 모두 그 작은 공간에서 그림책을 매개체로 서로 보이지 않는 소통과 감동을 나누고 있지요. 아마도 이것이 그림책 몸짓이 기획하려고 했던 원래 모습일 겁니다.


현재 계속 몸짓 워크숍을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공연화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작가들의 공연이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현장에서 독자들과 만나면서 발전할 거라 생각합니다.


천상현_그림.책.몸짓 기획자, 그림책상상 그림책학교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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