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예술
저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림책작가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언젠가는 그림작가가 되어 나만의 그림책을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림책을 봅니다. 그림책을 쌓아놓고 펼쳐놓고 오가며 바라봅니다. 그림책을 사고 얻고 주워옵니다. 저는 정크아티스트라고 불리길 바라는 마음에 버려진 많은 것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보며 받은 느낌을 다양한 재료들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쓰레기가 쌓여가는 집과 작업실을 보며 어느 날 한 가지를 선택하기로 했고 그 재료가 종이입니다. 종이류에는 박스도 있고 지관도 있고 온갖 포스터와 팸플릿, 종이 가방, 책 들이 있었습니다. 버려지는 종이로 오리고 접었습니다. 그러다 그림책 속의 그림들을 보게 되었죠. 그림책은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같이 놀자.” 그림책 속의 그림을 오리며 탄생한 것이 팝업북, 업사이클링 팝업북입니다.
팝업북은 신비로운 상상이 가득한 책입니다. 너무나 화려해서 눈을 뗄 수 없으며 신기해서 몇 번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게 합니다. 팝업북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고 그 기법은 무궁무진 셀 수 없습니다.
그것은 표현하는 기법이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작업도 같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 팝업북의 매력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팝업북을 편하게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고 팝업북을 보는 책이 아닌 장식하는 책으로 활용하는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출되지 않는 도서관의 팝업북, 찢어질까 조심히 보게 되는 선물로 온 책이기도 합니다. 팝업북은 펼쳐보며 상상하고, 팝업의 장면을 보며 이야기를 읽어내는 정말 흥미로운 책임에도 불편한 책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 맘대로의 팝업북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팝업북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언제나 쉽게 펼쳐보며 마음껏 놀이하다 찢어지면 다시 고칠 수 있는, 다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그런 팝업북을 말이죠.
버려진 그림책은 모두 재활용되지 않는 종이입니다. 코팅된 종이는 하드커버와 속지의 재질이 다르고 인쇄 잉크 등 여러 이유로 재활용되지 않고 모두 폐기 소각됩니다. 그런 그림책을 활용해서 나만의 업사이클링 팝업북을 만듭니다.
“내가 책을 찢는다고? 어머,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그림책이 버려지다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야….”
제가 만난 많은 분들이 그림책을 사랑했고 그림책을 보고 염려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그림책을 읽지 말고 찢어보라고, 내용을 생각하지 말고 그림과 캐릭터를 오려서 마음대로 붙여보라고 말합니다.
그림책을 너무 오래 보면 욕심으로 장면이 채워집니다. 이 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제 팝업북은 마음을 비우는 작업입니다. 그림책 속의 많은 그림들은 그 어느 것도 예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건 모든 그림작가들의 땀방울로 태어난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강아지 똥 한 덩이, 개천가 풀 한 포기, 풍경 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 하나까지 말이지요. 주인공만 멋진 것이 아닙니다. 그림책에는 먼발치 지나가는 행인마저도 소중하게 담겨있습니다. 가위로 하나하나 오리다 보면 팝업북을 만들려고 가위질한다는 걸 잊을 만큼 욕심껏 오려내기도 하죠.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고민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채워지기도 비워내기도 한답니다.
때론 그 많은 그림 중에 아주 작은,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 개미 일곱 마리를 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할까요? 더 오리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에게 물어봐 주세요. “이거면 된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그 이야기는 아이의 이야기니까요. 한 권을 만들고 나면 다시 또 다른 그림책이 말을 걸어오지요. 그럼 또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주세요. 그렇게 한 권 또 한 권이 만들어집니다.
종이를 자르는 가위 소리가 제 마음을 위로하고 안아줍니다. 혼자서 하는 힐링입니다. 그림책과 이야기하는 힐링, 나만의 팝업북은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행하게 했고 친구를 만들어주었으며 저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나눔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여행하며 사람들과 그림책을 이야기하고 그림책으로 팝업북을 만들며 그림책을 다시 보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누는 팝업의 기법은 누구나 알고 있는 종이접기와 북아트 기법을 기초로 합니다. 그럼에도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매뉴얼을 따라 함께 만들지만 다른 마음을 표현하기에 사랑스럽습니다. 이 매력을 모두 느끼고 계신 거죠.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저는 더 많은 그림책을 보게 되었고 책을 준비하며 어떤 분들과 마주할까 설레는 마음을 매일 느낍니다.
준비하는 과정에 먼지 묻은 그림책을 닦아주고 어떤 책을 준비해서 만날까 고민합니다. 같은 팝업의 기법이라고 해도 어떤 책으로 어떤 대상을 만나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저는 이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림책도 많이 봅니다. 매일매일 새로 태어나는 그림책을 보고 잊힌 듯 내게 온 그림책들도 보고 또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특히 이 작업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전합니다.
저의 팝업북은 그림책을 좀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하나의 연결 고리입니다. 보는 책으로 온 그림책. 즐거움을 주고 버려지는 책. 그 책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팝업북. 그리고 만들다 보니 궁금해진 그림책. 그래서 다시 보는 책이 됩니다.
팝업북이 궁금하다면 우리 함께 만들어볼까요? 버려진 그림책과 가위, 풀만 준비하세요. 내 맘대로 오리고 붙여 나만의 방식대로 붙여보세요. 멋진 팝업북이 만들어질 겁니다.
안선화_정크아티스트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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