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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 그림책 깊이 읽기

by 행복한독서

하루에도 수십 권의 신간 그림책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많은 책 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책을 골라서 읽어줘야 할까요? 그림책 고르기가 어려울 때는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 나들이를 가보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많이 읽어서 손때가 탄 책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서가에 꽂혀있는 여러 책 중 낡은 책을 찾아보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작가의 그림책이나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그림책, 전래동화라고 부르는 옛이야기 그림책들이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읽는 그림책 중에서 꼭 읽어야 하는 옛이야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는데 어느 점이 그럴까요?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옛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옛이야기 그림책에는 부모 세대가 어릴 때 읽어서 익숙한『해와 달이 된 오누이』『콩쥐팥쥐』『흥부전』『심청전』등과 같은 신화나 고전소설 이야기도 있고, 옛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설화를 그림책으로 만든 이야기들도 있습니다.『팥죽 할머니와 호랑이』『깜박깜박 도깨비』『반쪽이』『요술 항아리』등의 그림책입니다.

전해져오는 옛이야기는 저작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여러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다양한 형태의 그림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유아가 읽으면 좋은 글과 그림으로 그려진 경우도 있고, 초등학생이 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진 그림책까지 종류가 많습니다. 하나의 이야기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으니 부모 입장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어렵기만 합니다. 그럼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어야 할까요? 어떤 책이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될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입니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또는 팥죽 할멈과 호랑이 등의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여러 권 있습니다. 먼저 유아의 눈을 끄는 건 『팥죽 할멈과 호랑이』(박윤규 지음 / 백희나 그림 / 시공주니어)입니다. 닥종이 인형으로 만든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가 웃으며 팥죽이 담긴 그릇이 놓인 상을 책을 읽는 아이에게 주는 모습의 앞표지입니다. 표지 그림만 보았을 뿐인데 벌써 그 안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뒤표지의 허연 눈썹을 휘날리며 눈밭을 걷고 있는 호랑이도 민화 속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무섭다기보다는 친근함이 먼저 앞서는 그림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해 보입니다. 또한 유아의 경우 단순하고 반복된 문장으로 된 글을 부모나 교사가 읽어줄 때 훨씬 더 쉽게 책 속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알밤, 자라, 돌절구, 멍석, 지게 등의 사물과 할멈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때 알밤 하나가 폴짝폴짝 통통 찾아왔어.

“할멈, 할멈, 팥죽 할멈, 뭣 땜에 우는 거유?”

“이 팥죽 먹고 나면 호랑이가 꿀꺽 잡아먹는다니, 에구에구 어찌할꼬.”

“맛난 팥죽 나 한 그릇 주면 못 잡아먹게 해 주지.”

할멈이 척척척 팥죽 한 그릇을 퍼 주자,알밤은 후루룩 다 먹고는 아궁이 속에 쏙 숨었어.


이렇게 입말이 살아있는 표현이 반복되다 보니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보는 아이는 다음에 나올 상황을 예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이 모여 할멈을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게 됩니다. 힘없는 사물들이지만 이들의 착한 마음이 한데 모이면 무서운 호랑이도 물리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시공-팥죽할멈과호랑이.jpg ⓒ시공주니어(『팥죽 할멈과 호랑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재주 많은 다섯 형제』도 그렇습니다. 더불어 “폴짝폴짝 통통, 꿀꺽, 척척척, 후루룩” 등 의성어 의태어도 덤으로 익히게 됩니다. 이야기를 할 때나 글을 쓸 때 꾸밈말을 넣어 문장을 구사한다면 표현력이 훨씬 풍부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글을 읽는 사람도 지루하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더 흥미로워집니다. 이런 표현력을 배우기에 옛이야기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선조들이 숨겨놓은 비밀 찾기

이번에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조대인 글 / 최숙희 그림 / 보림)의 표지를 넓게 펴서 보세요. 호랑이와 할머니의 크기 차이에서 옛사람들에게 호랑이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림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취학 전 유아나 초등 저학년에게 적합합니다.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설화는 각 지방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호랑이가 할머니를 그냥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팥 까기 내기나 팥밭 매기 내기에서 이겨 할머니를 잡아먹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할머니를 잡아먹으려고 나타난 호랑이는 할머니의 살려달라는 말에 “할멈, 살고 싶으면 나랑 밭매기 내기하자. 할멈이 이기면 내가 이 밭을 다 매주고, 내가 이기면 할멈을 잡아먹고, 흐흐흐”라고 말합니다.

호랑이와의 대결이라니 결과는 눈에 보일 듯 뻔합니다. 당연히 호랑이가 이기지요.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혹시 호랑이가 늙은 할머니의 밭매기를 도와주러 온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로 호랑이가 할머니를 잡아먹으러 내려왔다면 왜 밭매기 내기를 하자고 했겠어? 그냥 잡아먹으면 되지. 밭매기 결과야 눈에 뻔히 보이잖아. 당연히 힘센 호랑이가 유리하지’

라는 너무도 확실한 결말에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깁니다. 호랑이가 왜 그랬는지 답이 없는 답을 찾으려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광경입니다.

보림-팥죽할머니와호랑이.jpg ⓒ보림(『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그럼 호랑이는 누구일까요?

옛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탐욕스러운 권력자를 상징합니다.

긴 역사 속에 힘없는 백성들이 수백 수천 번 받아온 어려움이 호랑이로 나타납니다.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속의 호랑이도 그렇게 그려집니다.

이야기 속의 호랑이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 할머니의 힘든 밭매기를 도와주니, 산신령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먹는 음식을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호랑이까지 나서서 도와줄 정도이니 하루에 세 번이나 먹는 음식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라는 옛사람들의 뜻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밭이 왜 팥밭일까요? 예로부터 붉은색은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여겨져 한 해를 마무리하며 팥죽을 먹었습니다. 나쁜 것은 다 물러가고 좋은 것을 맞이하려는 마음이지요. 이렇게 옛이야기는 선조들이 숨겨놓은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뒷이야기의 전개는 보잘것없는 약한 존재들이 힘을 합쳐 호랑이로 상징되는 나쁜 존재를 물리치게 됩니다. 호랑이처럼 약한 존재를 괴롭히는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교훈적인 면까지 들어가 있으니 읽는 사람에게 시원하고 통쾌함을 가져다줍니다. 긴장하며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도 속도를 더해 책장을 넘기게 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안도하며 얼굴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게 됩니다. 옛이야기를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또 다른 옛이야기 책을 펼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진 여러 그림책을 놓고 비교해가며 읽어보세요. 하나의 이야기에 여러 그림책이 있는 것은 옛이야기가 유일합니다. 유치한 만화 같은 그림도 아니고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져 공포감을 일으키는 그림이 아닌 것이 좋습니다. 어려운 문체를 사용하지 않아 술술 읽히며 다양한 표현을 사용해 읽는 데 재미가 있는 책이 좋은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그림책으로 비교해 같이 보면 아이에게도 좋은 그림책을 골라내는 눈이 길러지게 됩니다. 아이는 자신이 고른 책이니 몇 번이고 다시 보며 이야기에 빠져들 것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가장 좋은 책임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삶의 지혜 전하는 그림책의 가치

아이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전집을 들여놓았는데 읽지 않는다고 아이를 나무라지 마세요. 전집보다는 낱권으로 된 책을 비교해가며 한 권 한 권 고른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아이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읽기 싫은 책을 억지로 읽는 것은 아이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의미를 그냥 지나치게 합니다. 열 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열 번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독자가 책을 구입할 때는 당연히 그 책이 옛이야기의 줄거리나 인물 설정을 원래 이야기에 충실히 따랐을 것이라고 믿고 구입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여럿 있습니다. 그럴듯한 그림으로 눈을 즐겁게 할지는 몰라도 옛사람들이 전하려는 뜻이 제대로 담겨있는 책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옛이야기 그림책이 주로 유아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읽는다는 점에서 사고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옛이야기를 읽는다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콩쥐팥쥐』 이야기에서 콩쥐가 원님과 혼인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혼인 후 팥쥐의 악행으로 콩쥐가 겪게 되는 그 뒷이야기에서 전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요.

이 책이 잘 만들어진 책인지 아닌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여러 책을 비교해봐야 겨우 알 수 있듯이 옛사람들이 전하고자 했던 뜻이 잘 표현되게 만들어진 그림책을 찾는 것이 그래서 어렵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와 편집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이와 함께 옛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전에 알던 그 옛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부모 역시 잘 만들어진 옛이야기를 읽고 자란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바쁜 세상사에 눌려,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이 아이의 그림책 속에서 되살아나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옛이야기 그림책은 세대를 아우르며 모든 사람들이 꼭 읽고 그 미덕과 가치를 알아가야 할 우리 조상들이 남긴 선물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아이들과 함께 책 속에 숨어있는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며 내 아이의 미래까지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바로 옛이야기 그림책입니다.


김선아_그림책씨앗교육연구소 대표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1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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