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마을의 탄생
이동연, 유사원 지음 / 408쪽 / 18,000원 / 마리북스
『예술마을의 탄생』은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이동연 교수와 유사원 겸임교수가 예술과 마을 사이 절묘한 합을 이뤄 함께 펴낸 책이에요. 답사, 인터뷰에서 최종 원고 작성까지 공동 작업으로 이뤄진 결과물이지만 그 안에서 다른 글의 결을 알아차리는 재미가 있어요.
우리가 터 잡은 책마을해리는 책 만드는 마을이라는 뚜렷한 방향이 있어요. 저자들은 예술마을을 어떤 갈래로 매겼을까요. 예술마을이 갖는 정체성과 역사성, 창의성, 공동체성이에요.
정체성은 예술과 마을, 예술가와 마을주민과의 관계를 말해요. 어느 편이 어느 편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요. “예술인 스스로 마을 주민이 되고 마을 주민 스스로가 예술가가 될 때” 예술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것으로요. 역사성은 급조가 아닌 오랜 세월을 켜켜로 쌓아온 “전통문화유산과 예술마을로서 기원과 서사”를 챙겨보는 것이에요. 창의성은 유명 예술인이 태어나서거나 화려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해서만이 아닌 “마을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견된다고 해요. 공동체성은 “아무리 위대한 예술인이더라도 예술인 혼자 사는 곳을 예술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마을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남는 부분을 공유하며 저마다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통정신”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고 살펴주어요.
저자들은 강원 강릉에서 제주 하례리까지 우리나라 열세 곳 예술공동체를 찾아 종횡 누볐어요.
‘그렇지! 이 마을이 빠질 수 없지’ 하는 마을도 있고,
‘어쩌면! 이런 마을이 있었네’ 낯선 마을도 있어요. 분류마다 마음 포근해지는 마을을 짚어볼게요.
유서 깊은 전통문화유산이 있는 마을은 강릉 단오·명주예술마을과 임실 필봉굿 예술마을, 안성 남사당 예술마을, 담양 생태예술마을이에요. 이 책이 가진 놀라운 힘 가운데 하나는 예술마을을 품은 지역의 바탕 정보를 꼼꼼히 찾아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남사당 예술마을을 이야기하며 마을이 가진 여러 면모에 대입해, 예술마을을 구성하는 요소를 풀어내주기도 해요. 신명의 공동체로서 사람, 일상 공간의 전복으로 낯설어진 공간, 민초들의 풍자와 해학이 넘실대는 정신, 이렇게 사람·공간·정신 세 가지 요소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예술마을로서 정체를 확보하는 것이라고요. 지역마다 매개자의 역할을 손에 꼽기도 해요. 어디든 오래오래 피워낸 수만 갈래 땅과 사람의 자취를 이끌어내, 새로운 무엇과 연결 짓는 존재에 대해 깊은 애정으로 살펴요. 담양 생태예술마을에서 도드라지는 매개자로 향토사 전문 책방을 운영하는 ‘이목구심서’ 전고필 선생같이요.
특화된 예술 장르를 간직한 예술마을에서는 통영 윤이상음악마을부터 화성 민들레연극마을, 평창 계촌 클래식마을, 원주 춤·그림책마을, 산청 큰들마당극마을로 이어져요. 음악, 연극, 클래식, 춤과 그림책, 마당극 같이 마을이 특별히 주목하는 예술 장르로 마을 이름을 붙여 예술마을마다 특색을 드러내고 있어요.
책과 마주하며 처음 가졌던 질문이 있었어요. 예술과 마을을 합쳐놓았을 때, 독특한 예술 세계를 가진 저마다가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 쉬울까, 하는 근본 질문 말이에요. 큰들마당극마을에서 그 풀이를 엿볼 수 있었어요.
공동체를 이루고 난 뒤에도 한 달 한 번 칭찬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전체 월례회의, 나 전달법, 멘토와 대화, 단짝놀이를 통해 ‘유지보수’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눈물겨웠어요. 특히나 3년의 팬데믹을 통과하며 예술이라 이름 붙은 개인이든 공동체든 모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우여곡절 속이었는데, 그 안에서 더 큰 힘으로 헤쳐나올 수 있었던 배경을 그들만의 공동체성에서 살필 수 있었어요.
세 번째 장은 조선소 배후지에 꽃핀 부산 영도 깡깡이예술마을, 도심 예술인들의 네트워크 성북예술마을, 지식 예술 생활이 선순환하는 파주 문발동 인문예술마을, 제주 하례리 정령의 예술마을로 이어져요. 주민들 스스로 품을 들여 이룬 마을이며 도시재생으로 탄생한 창의 예술마을들이에요. 이 장에서는 문화적 도시재생이 불러오는 소외 현상,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고찰이 눈에 들었어요. 예술가들이 외지인처럼 화려한 예술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거나 마을 속속들이 여행객들의 포토존으로 만들어 주민들의 삶을 대상화하고 만다면 그것도 ‘예술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속 깊은 살핌을요. 그런 의미에서 감천문화마을, 동피랑 벽화마을과 다른 결로 짚어준 깡깡이예술마을 사례는 의미심장해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기나긴 여행이 막을 내렸어요.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예술마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지표가 생겼구나 하며 어떤 기대도 스멀거려요. 이 책은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공동체를 안내하는 나침반이에요. 예술마을마다 그곳에 깃든 사람과 공간, 정신의 깊이를 역사에서 땅에서 사람에게서 발품으로 찾아내 중계하고 있으니까요.
책을 덮으며 다시 읽은 펴내는 말에 저자들이 새로 정의한 예술마을이 마음에 콕 박혀요. “시간의 주름, 확장하는 공동체, 환대와 우정이 교감하는 곳, 일상을 낯설게 하는 곳”으로서 예술마을 말이에요.
이대건_책마을해리 촌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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