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밝힌 어른 김장하의 선한 영향력

by 행복한독서

줬으면 그만이지

김주완 지음 / 359쪽 / 20,000원 / 피플파워



『줬으면 그만이지』는 이 시대 큰 어른인 김장하 선생님 취재기입니다. 저는 오랜 인연으로 김장하 선생님의 인품과 행보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책을 읽고 난 후 뭔가를 주었다는 생각조차 없는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로 한평생을 산 선생님의 두터운 삶의 이력 앞에서 새삼 숙연해졌습니다.

큰 어른, 큰 스승인 김장하 선생님이 그렇게 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베풂 앞에서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선생님이 진주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살아갈 기운이 돋아납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선생님의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한약사가 되어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일군 수익으로 50년 넘게 지역사회를 후원해온 아름다운 부자, 사학재단 명신고를 설립해 국가에 헌납하고 은퇴 후 수십억을 경상국립대에 기부한 어른. 장학사업은 물론이고 언론, 문화, 시민사회, 학술, 여성, 농민, 노동자를 지원하며 지역 문화를 지켜낸 의인. 그 모든 것을 하면서 결코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 없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선생님의 이야기는 화제의 다큐멘터리 MBC경남 「어른 김장하」로도 제작,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MBC경남 뉴스데스크 화면.png MBC경남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책이 인터뷰가 아니라 김주완 기자의 취재기 방식을 택한 까닭이 흥미롭습니다. 결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분이지만 찾아온 사람을 내치지 못하는 선생님의 성정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담았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도 부끄러운 게 많다”며 “남은 세월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선생님은 2021년 12월,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재산을 경상국립대에 기증하며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해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2022년 5월, 60년간 운영해온 한약방의 문을 닫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감사를 전했습니다.

“나에게 갚지 말고 사회에 갚아라.”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해 온 것”

이라며 손사래 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책이나 다큐멘터리에 담지 못한 이야기, 밝히지 않은 이야기들이 훨씬 많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리 캠페인.png 가정법률상담소와 진주여성민우회 공동 거리 캠페인

아름다운 이야기. 그러니까 미담이 아름다울 수 있는 까닭은 모두가 널리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응원하고 싶고 닮고 싶고 남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가치를 담은 이야기는 이익을 담은 이야기에 비해 그 목소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의 몫이 더 큽니다. 김주완 기자의 성실함과 김현지 피디의 기획력, 강호진 감독의 열정은 김장하 선생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호응하고 감동받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MBC경남의 다큐멘터리는 올해 설 연휴 전국 방송으로 방영되었습니다. 진주를 중심으로 펼쳐진 한국 최초이자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대표적인 인권운동인 형평운동이 100주년을 맞은 지금, 가난과 성별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나눔의 삶을 실천해온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이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더 감사하고 절실한 이유입니다.

남성당 한약방에서.png 남성당 한약방에서 저자 김주완(왼쪽), MBC경남 김현지 피디(오른쪽) ⓒMBC경남

김장하 선생님은 저희 서점이 큰 위기에 처해있을 때 두 번에 걸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책에도 소개된 일화입니다. “떨리는 가슴으로 찾아갔는데 나올 때 제 손에는 또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죠. 첫 번째 봉투가 ‘네 꿈을 한번 펼쳐보라’는 응원과 격려의 봉투였다면, 두 번째는 제가 급해서 찾아간 생명의 동아줄이었죠.”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서점이 본궤도에 올랐을 때 그 빚을 갚으며 이자는 어떻게 합니까 여쭈니, “이자는 무슨 이자냐, 책방 더 잘해가면 됐다”고 하셨습니다.


2년 전부터 진주교육지원청을 통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청소년 교육기부 활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 기부 심부름만 저희가 할 뿐이지 실질적으론 김장하 선생님이 하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갚아야 할 이자를 이렇게나마 갚는 것이니 말입니다. 앞으로 얼마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힘닿는 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서점은 책을 쌓아두고 파는 곳이지만 이해타산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곳입니다. 동네책방과 도서관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는 공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공간입니다. 이를 지켜가는 일이 김장하 선생님의 가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태훈_진주문고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동물의 삶과 존재를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