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무라타 사야카 외 7인 / 홍은주 옮김 / 412쪽 / 17,000원 / 문학동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그야말로 아시아 국가들의 대반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별 예선 경기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르헨티나를, 일본은 독일을, 대한민국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일본이 독일을 꺾었을 때 수많은 한국인들이 시기와 질투보다는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일본의 불행을 한국의 행복으로 여겼던 그동안의 역사와는 분명히 달라진 분위기였어요. 마찬가지로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었을 때 일본을 비롯한 이웃나라 사람들의 축하가 쏟아졌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 제목처럼 가까운 만큼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이웃나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광경이 새삼스럽기도 하고 뭉클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매번 최약체이자 탈락 1순위로 거론되는 아시아 국가의 일원으로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정이 싹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소설집 『절연』도 한국과 일본 문화계의 우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동시대 작가들이 한 권의 책을 절반씩 써보자는 제안이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아홉 개의 도시, 아홉 명의 젊은 작가들이 ‘절연’이라는 키워드로 집필한 단편소설이 수록되었습니다.
‘혼돈’의 세계를 떠나 ‘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본), 남편의 첫사랑을 두 번째 아내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여자(싱가포르), 오직 긍정적인 감정만을 품어야 하는 ‘긍정 도시’의 사람들(중국), 혁명 속에서 만나고 이별하는 청년들(태국), 남편을 비밀경찰에 넘긴 여자(홍콩), 지방과 도회, 삶과 죽음으로 두 번 이별하는 청춘들(티베트), 어느 날 자식과 완전히 단절하기를 선언한 어머니(베트남), 모두가 이방인인 나라에서 끊임없이 이별하며 사는 아이들(대만), 윤리관의 충돌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 절연을 택하는 사람들(한국)까지.
아홉 개의 작품이 하나의 주제, 한 권의 책으로 묶여있지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더 선명해 보입니다. 언어와 문화에서 비롯되는 다름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아시아 국가로서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감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이번 앤솔로지를 슬기롭게 즐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라는 낮은 장벽을 넘어선다면 아시아 문학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기쁘게 모험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절연’일까요. 소설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무라타 사야카와 정세랑 작가의 대담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절연에는 개인적인 절망이 있지만”(무라타 사야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 후에는 전환이 가능”(정세랑)합니다. 그러므로 ‘절연’이란 “부식된 것은 끊어내고 더 강력한 연결점을 찾기 위한 자극”이며 “이전 시대와 헤어지는 과정”(정세랑)인 것이죠.
이 책이 낡은 연결 고리를 끊어내고 아시아 문학계가 앞으로 쌓아갈 우정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그리고 멈추지 않는 우정일 테니까요. (문학, 일반)
문서희_책방 모도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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