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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엄마들의 분투와 해방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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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김미월 외 5인 / 204쪽 / 13,000원 / 다람



배신감. 임신과 출산, 육아를 처음 겪으며 느낀 감정이었다.

누구도 내게 그것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정확히 이야기해준 적 없었다. 이렇게 고되고 무섭고 아프고 피곤한 줄을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먼저 경험해본 여자들이 은밀하게 끌어안아 온 고통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았을 줄이야.

두 아이의 엄마인 내게도 감추어진 고초는 있다. 책방을 운영하는 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평일 낮 다섯 시간,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는 토요일 여섯 시간에 책방 문을 연다. 그 사이 책을 만드는 편집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책방에 머무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때에는 두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꾸린다. 늘 시간이 없어서 뛰어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더 매진하거나 나 자신을 보살필 시간은 포기하기 일쑤다.


이 글도 절반쯤은 침대에 누워 머릿속으로 썼다. 아이들을 재우려 함께 눕고 두 아이 모두 완전히 잠들 때까지, 운이 좋으면 한두 시간이 걸린다. 운이 나쁘면 그대로 푹 잠이 들어 아침을 맞이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자리에 누운 채 끊임없이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대로 잠들면 끝장이야. 아침이 오면 안 돼. 생각하자, 생각해야 해.’ 그런 결의에 차서 써야 할 글의 소재를 찾고 이야깃거리를 연결 지어 글을 구성한다.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을, 내가 새로이 시도해볼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구상한다. 내게 오지 않은 사건들을 갈망하면서. 쓰지 못한 몸으로 잠들지 않기 위해, 날마다 퍽 애를 쓴다.


“쓰지 못한 몸은 언제나 쓰고 있는 몸이기도 하다. 아이를 재우며, 아이를 먹이며, 아이와 함께 걸으며,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를 외면하며, 아이가 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써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려 애쓴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시인 혹은 소설가로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동시에 엄마인 여성들이 매일 겪는 분투를 담고 있다. 여섯 명의 작가가 살림을 꾸리며 시간 없음과 에너지 없음에 시달린 채 자신의 문학적 성취에 도달하기 위해 불안해하는, 동시에 엄마로서의 역할에서도 불충분한 느낌에 좌절하는 여러 면면의 감정들이 펼쳐진다.


작가들은 어떤 얘기부터 꺼낼지 망설인다. 이미 엄마가 된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디테일을 보여줄 수 없음을. 엄마인 작가로서 겪은 고난은 이야기되어도 온전히 전달될 수 없음을.

그렇다면 그들이 그려내는 절망과 희망은 대체 무슨 소용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들이 어느 밤 써 내려간 행위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대답하고 싶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낮 내내 달리고 쓰지 않으면서도 쓰며 아이들이 잠든 밤을 기다렸을 그들은 마침내 쓰는 몸이 됨으로써 잠시 동안 해방되었을 테니까. “어두운 새벽 혼자 깨어 있는 이런 시간이 없다면 낮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라는 백은선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지극히 사적이고 고유한 각자의 세계에서 그들은 오늘도 고된 일상을 견딘다. 뛴다. 밤은 온다. 생각은 계속된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들지 않기 위해. 거기에서 이야기는 태어난다. (에세이, 일반)


김민채_책방 ‘취미는 독서’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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