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우아한 제로 웨이스트 여행
신혜정 지음 / 368쪽 / 18,800원 / 사우
작가 소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무모한 여행을 기획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해졌다. 하고 있는 일이 길어져 매너리즘에 빠진다고 중국으로 가는 배에 자전거를 싣는 것이 작가의 말대로 ‘눈을 질끈 감는’다고 가능한 것일까? 게다가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여행이 목표라니. 주변의 누구 하나 큰 반대를 하지 않은 걸로 봐서 아마도 작가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상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싶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친다. 이미 다녀온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해, 힘!’을 외쳤다.
거창한 여행의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허둥대는 모습은 1년 반에 걸친 장거리 여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기대를 더했다. 중요 포인트 몇 개만을 설정해 놓고 달리는 길에서 많은 우연과 인연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쌓인다. 갈림길에서의 고민, 순간순간 앞에 놓인 상황과의 타협, 버릴 수 없는 고집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험을 만나기도 하지만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주고 따스한 차를 건네주는 이웃이 되었다. 자전거 안장 위에서 외로움과 체력 고갈로 힘들 때에는 서둘러 그 순간을 피하는 것보다 느림을 선택한다. 천천히, 바로 눈앞만 보며 페달을 밟는다. 머릿속으로 수도 없는 고민과 후회와 결단을 해도 눈앞의 언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달리는 수밖에.
“지금 나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산다는 게 아닐까. 일이나 목표만이 아니라 내 몸도 주변도 두루두루 둘러보고 챙기고 감사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최선이 아니려나 생각된다.”
작가가 여행의 막바지에 내린 결론이다. 지금에 충실한 삶이 위대하고 멋지고 번쩍이는 삶 못지않게 소중한 것임을 나 또한 자전거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더욱 소중한 문장이다.
보통의 여행이라면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편은 하지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짐을 페니어에 나눠 싣고 달리는 자전거 여행에서는 불가능한 거 아닌가? 그럼에도 들르는 가게마다 노 비닐, 노 플라스틱을 외치는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여행을 하기 전 기후 대응 NGO 단체에서 일을 한 때문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지구를 살릴 거창한 다짐이어서가 아니라 작가의 몸에 녹아내린 일상 속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제법 길게 여행을 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느린 호흡의 실천력 강한 여행을 읽고 보니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쓰레기 재활용 센터를 찾아가 다양한 경험을 한 것! 태어나 살고 있는 한국에서 바라보는 그들과, 직접 무리 안으로 들어가 몸으로 느끼는 그들은 다르다. 일회용 플라스틱도 그네들 삶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문제가 보이고 우리와는 다른 해법이 떠오른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를 인터뷰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긴 여정을 옆자리에서 들으며 이것저것 묻고 싶어졌다.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으며 하루하루를 달려 나가는 자전거 여행이야말로 순간순간에 충실한 여행 방법일 것이다.
이정은_발전소책방.5 협동조합 조합원, 『자전거로 유럽 도시 읽기』 공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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