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아홀로틀 이야기
린다 분데스탐 글 / 이유진 그림 / 48쪽 / 16,000원 / 어린이작가정신
앞뒤 면지 속 인용 글을 합쳐 보았다.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이 된다. 사실 연약하나 끈질긴 생명력은 지구 파괴자 바보들(아홀로틀이 부르는 인류)과는 좀 거리가 있다. 마지막에 남은 건 바보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입에는 지구가 나이 드는 과정을 펼침면 하나로 보여준다. 당연히 인류는 맨 오른쪽 끝이다. 표지에서 본 귀여운 아홀로틀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읽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거의 꼴찌로 지구에 등장한 인류가 다른 생명체는 물론 스스로를 파괴하고 마침내 지구를 끝장내는 이야기가 담길 줄은 필자 역시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멕시코 호수 속에만 살아남았다는 아홀로틀은 어느 날 도시와 가까운 호수에 나타났다. 987개 알 중 딱 하나 살아남은 아이다. 혼자여서 심심할 것 같지만, 아니다. 물속에 떨어진 바보들 물건 덕분에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아홀로틀은 그 물건을 ‘흥미로운 보물’이라 부른다. 배경은 주로 호수 아래를 보여준다. 987개 알 중 혼자 태어나는 장면부터 플라스틱 빨대가 있으니 어쩐지 불안하다. 어느 날 물 위로 올라가 보니 바보들이 흥미로운 물건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남자 바보 팔뚝에 쓰인 문신이 의미심장하다.
“오늘을 즐겨라” 오늘만 살 듯이 빠른 속도로 지구를 망가뜨린 인류에게 주는 질문이겠다.
바보들이 호수 속으로 던져 넣은 보물 중 특히 멋진 보물은 스마트폰이다. 그 물건으로 아홀로틀은 친구와 사진도 찍고 영화 「스타워즈」도 본다. 코믹한 장면은 대략 이즈음이 끝이다. 이유는 몰라도 친구들이 떠난 뒤 외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보물을 닦고 재미나는 고양이 영상을 보아도 마음은 가라앉아 있다. 거품에 몸을 씻었더니 발진이 돋아났고 곧이어 물이 뜨거워졌으며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살을 타고 아홀로틀은 호수 밖으로 내팽개쳐진다. 물론 무슨 일인지 주인공은 알 수가 없다. 모든 게 끝난 듯한 고요함이 한동안 이어진 후 더 넓어진 호수에서 마침내 아홀로틀은 동반자를 만난다.
독자에게는 온 도시가 불타고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과정을 지나 모든 게 잠긴 상황이 보인다. 아홀로틀은 여전히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더 커졌지만 조금 뿌연 호수 속에서 987마리 아기들을 돌볼 일만 남았다. 바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다. 조금 떨어진 곳에 배터리가 거의 남지 않은 스마트폰이 파묻혀 있다. 바보들이 이루었던 문명은 그렇게 완전히 방전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되 끝이 보이는 문명의 쓸쓸한 말로를 이렇게 귀여운 아홀로틀의 눈으로 미리 보게 되는 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김혜진_그림책보다연구소 소장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