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
김소담 지음 / 308쪽 / 17,000원 / 책이라는신화
축제 시즌인 만큼 책방을 초대하는 자리가 많아 제법 분주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종종 학교 북 페스티벌 행사 기간이나 직업 체험 박람회에 이동식 책방을 꾸려서 간다. 대형서점, 온라인서점과 다른 방식으로 책을 고르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책 처방’ ‘문장 처방전’을 판다는 나름의 이색적인 경험을 팔고 있다.
지난주 대전 청소년 직업 체험 축제 한가운데 작은 책방의 체험형 마켓 부스를 설치했다. 책방 부스는 공연과 만들기, 먹거리로 가득한 엑스포 타워 앞 광장 안에서 망망대해에 표류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작은 배 같았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제스처와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의 에너지란 폭발적이었다. 과연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체험 박람회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렇게 이동식 책방을 지키며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를 보았다. 전업주부를 택한 네 아이의 아빠, 남성의 자유를 위한 성평등 교육활동가, 제주 소농 공동체, 작은 섬에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여성, 청년 대장장이, 그리고 청년들의 다양한 삶을 기록한 책의 저자이자 여행가 모모까지. 2030 청년 세대들의 열 가지 각양각색인 삶을 들여다보면서 문득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사회의 키워드가 아니라 나만의 키워드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 4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책방을 꾸리며 어떻게든 누군가와 같이 읽어보겠다고 꾸역꾸역 우기고 버티는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었다. 매일, 매달, 4년 동안 책방을 지키며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 여전히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고 그 답은 수시로 변해왔다.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만나자 지금 디지털 세상 속에 종이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졌다. 축제 한복판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해맑게 웃고 떠드는 사랑스러운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살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난, 이 시대 청년들이 인생에 있어 비트코인이나 주식이 아닌 다른 무엇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제 우린 너무나도 잘 알지 않나. 돈 모아 좋은 집 사고 좋은 차 굴리는 게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어차피 큰돈을 모으기는 너무나 어렵다는 걸.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시간과 품을 들여 투자해야 하는 대상은 뭘까. 그건 다정한 관계고, 선의라고 믿는다. 지루한 일상, 불안한 미래에서 우릴 건져 올릴 것은 관계다. 관계 속에서 삶은 풍성하고 특별해지며, 어디에 있든 든든하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78쪽)
30여 년을 서울에서 아파트 키즈로 살다가 부산 영도에서 작은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다양한 모임을 꾸리는 부부 심바와 오동의 말은 ‘관계’ 속에서 웃고 울고 관계 덕분에 책방을 지속할 수 있었던 내 모습을 보는 거울 같았다. 아마도 관계를 통해 책을 고르고 관계를 통해 앎을 확장해 나아간다는 점이 작은 책방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시간을 들인 만큼 내 동네”라는 그들의 말을 곱씹으며 책 처방전에 체험 학생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책에 책방 스탬프를 찍고, 책 속 문장을 펼쳐 보여주며 따뜻한 몇 마디를 건네는 경험을 했다. 나의 예감은 기우에 불과했다. 시끌벅적한 행사장에서 고요히 쉼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누군가와 책으로 대화하고 싶은, 모르는 책과 책방에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는 미래의 책방 손님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틀 동안 청소년 직업 체험 축제에서 작은 책방과 책방을 찾은 학생들의 키워드는 ‘다정함’이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에게 들려 있으며, 그렇기에 그 길은 정해져 있거나 남들과 똑같지 않다고. 그 유일무이함을 깨닫고 나의 길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살 만한 이유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305쪽)
웃으며 경로를 이탈할 줄 아는 책 속의 청년들처럼 책으로 학업이 아닌 삶을 고민하고 나눌 줄 아는 청소년들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이 서로의 온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즐거운 현장의 책방지기로 살아야겠다는 사명감까지 느껴지는 건 과언이 아니다. 무거운 책장과 책을 다시 싣는 내내 몸은 고단했으나 이상한 자신감이 퐁퐁 샘솟았다. 길이 어떻게 나아가고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책’이라는 방향타만 잡고 있으면 길은 만들어질 거라는 믿음. 저자의 말대로 ‘인생이란 눈치 보지 않고 춤을 추는 것’이니까!
조예은_버찌책방 대표, 『여자에게 여행이 필요할 때』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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