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귀고리
세라핀 므뉘 글 / 실비 세르프리 그림 / 양혜진 옮김 / 96쪽 / 16,500원 / 산하
“오늘부터 황금색(노란색)만 가지고 놀아야지~!”
1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입니다. 반에서 인기 있는 한 아이가 경주 여행을 다녀오더니 황금색에 꽂혔습니다. 노란색 종이를 쏙쏙 골라 종이접기를 하고, 노란색 블록을 모아 쌓기 놀이를 하더군요. 처음엔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어떤 파장을 가지고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요.
아이들 모두가 노란색만 가지고 놀더니 급기야 본래 기독교인인 한 아이가 자칭 불교 신자가 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인기 있는 아이를 중심으로 ‘노란색은 불교의 색’이라는 논리가 생겼거든요.
모든 일은 이렇게 작은 일에서 비롯됩니다. 동화이자 그래픽노블인 『분홍 귀고리』 속 아나이스와 친구들의 사건도 그러했습니다. 사건은 가을이 무르익은 10월의 어느 토요일에 시작됩니다. 마을에서 가장 예쁜 소녀 아나이스의 붉은 머리가 더욱 빛을 발하는 계절이었지요. 아나이스가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나(미아)에게 말을 겁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미아의 분홍 귀고리가 아나이스의 귀에서 찰랑거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다음 날부터 마을의 여자아이 몇몇이 비슷한 분홍 귀고리를 달고 다니더니, 며칠 새 마을 사람들에게까지 유행이 퍼집니다. 엄마들, 할머니들도 처음에는 너무 젊은 스타일 아니냐며 쑥스러워했지만 곧 유행에 동참합니다. 봄이 되자 마을에는 두 종류의 여자만이 존재합니다. 분홍 귀고리를 한 여자와 분홍 귀고리를 하지 않은 여자.
분홍 귀고리를 한 여자들이 모임을 열기 시작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배타적인 규정을 만들어낼수록 모임의 결속력이 단단해집니다. 삼대가 분홍 귀고리를 해야 생선을 살 수 있다던가, 분홍 귀고리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검은 옷만 입어야 한다던가 하는 말도 안 되는 규정이 생겨나지요.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기도,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어집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모두가 똑같아지는 모습이 오싹합니다.
이 책은 계절의 흐름에 따른 색감 변화가 인상적인데, 특히 두 가지 분홍이 의미 있습니다. 분홍 귀고리는 무심코 유행과 인기를 좇고 다수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편을 가르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나의 색보다 인기의 색을 좇는 아이들과 함께 분홍 귀고리의 의미와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더 나아가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다수에게 힘을 실어줬을 때 얼마나 큰 균열과 갈등을 불러오는지 역사적, 현시대적 사례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면지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가을이 되면 붉은빛으로 변하여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입니다. 그런데 떼를 지어 한 곳을 향하는 연어 말고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한 마리에 주목해 주세요. 당당히 싱긋 웃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떼로도 큰 힘을 가지지만 그에 앞서 각자의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힘을 가진 존재들이여, 인기와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줏대 있게 나아가요, 우리!
김설아_서울탑산초 교사, 『좋아서 읽습니다, 그림책』 공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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