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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Nov 01. 2023

콘텐츠로 펼친 서울의 전통시장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130

시장에 가면~

김정선 글·그림 / 68쪽 / 39,000원길벗어린이



아침에 일어난 도리(아이)와 토리(강아지)가 그 무엇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어요. 그리고 곧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찾으러 갑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전통시장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시장에서 생선, 꽃, 화분, 과일, 약재 등등 온갖 물건을 구입하면서도 도리는 계속 “없다!”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다음 시장으로 여정을 이어가는데요. 도리와 토리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무엇’은 ‘무엇’일까요?

『시장에 가면~』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방문해 그림책들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그림책을 읽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의 그림책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가 있었답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다른 나라 독자들이 우리 그림책을 보았을 때, 한국의 그림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였습니다. 지금은 워낙 문화 방면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지만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공간을 콘텐츠화해 보는 건 어떨까 싶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독자들도 우리의 그림책을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울이라는 공간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포부가 생겼다고 할까요?


그 첫 일환으로 서울에 위치한 전통과 특색이 살아있는 시장을 소재로 그림책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시리즈로 할 계획이었고 『시장에 가면~』의 뒤 면지를 보아도 아이가 “또 없다” 하여 다음 여정을 기대하게 되는데요. 『시장에 가면~』의 작업이 워낙 방대하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지금은 마음이 살짝 바뀌었답니다. 능력의 한계치를 깨닫고 그 뒷이야기를 그림책으로 계속 진행할 수 있을지 주저하고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공간, 그중에서도 전통시장이라는 특색 있는 공간에서 과연 어떠한 부분을 콘텐츠화해야 할까? 처음 구상 단계에서 가장 초점화를 한 건 각 시장의 특색과 공간, 동선, 분위기였습니다. 

가령 제 어릴 적 기억 속의 노량진 수산시장(옛 건물)은 약간의 축축한 긴 바닥, 복도를 따라 수많은 흥정하는 사람들과 상인들, 양옆에 펼쳐진 다양한 생선과 어패류 등이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시각적으로 복작복작할 뿐 아니라 청각적·후각적으로도 다양함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이중 ‘노량진 수산시장의 길고 좁은’ 통로를 특징으로 잡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책 양쪽 페이지의 날개를 만들어 접혀있을 때는 수산시장의 외관이, 열릴 때에 생성되는 가로로 긴 4페이지는 시장 내부 기억 속의 긴 통로가 되었습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에 있던 꽃시장(현재는 3층)의 경우 터미널 지하에 있던 특성을 살려 아래쪽에 날개를 달아 닫혔을 때는 터미널 외관이, 날개를 펼치면 공간이 아래로 확장되어 터미널 지하에 있는 꽃시장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모든 시장이 가진 각각의 공간과 구조적 특성들을 책이 가진 물성의 파라텍스트를 통해 표현해 보고자 한 것에 중점을 두고 작업 기획을 하고 실제 프린트까지 가능하도록 대수를 맞추는 단계까지, 말 그대로 구조를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구조는 시장들의 공간적 특성을 표현하면서 흥미로웠지만, 제작 단가가 너무 높아 현실적으로 제작이 불가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제작이 가능한 지금의 형태, 가로상철의 제법 큰 판형과 아래쪽 한 방향으로만 책이 펼쳐지는 구도로 결정되고 이에 맞춰 스케치부터 다시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스케치만 바꿔 진행하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는데요. 바로 처음 의도했던 각 시장의 공간적 특성이 한쪽 방향이 펼쳐지는 방식으로는 표현이 불가했습니다. 

그래서 ‘서울 공간의 콘텐츠화’라는 큰 주제는 유지하되, 표현의 초점을 각 시장의 공간적 특성이 아닌 서울이라는 큰 공간에서 각 시장의 위치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일례로 광장시장과 방산시장 그리고 중부시장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일렬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광장시장의 서문으로 들어가서 남문으로 나오면 청계천 건너 방산시장에 들어갈 수 있고, 방산시장을 통해 반대로 나오면 중부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위치적 특성을 그대로 책의 물성에 맞춰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장들의 위치와 배열은 반대로 첫 의도였던 사방의 접지를 통해서는 표현이 불가능했겠지요.

매 장면의 그림에서 특별히 공들인 부분은 시장의 특성상 물건과 사람이 가득함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저 물건들의 나열로 보이지 않기 위해 곳곳에 그림을 읽게 하는 장치들을 설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 『시장에 가면~』을 읽다 보면 아마 의문이 꼭 생기실 거예요. ‘왜 이렇게 그렸지?’ ‘토리는 무엇을 보았을까?’ ‘토리는 왜 점프를 했을까?’ ‘도리는 토리와 둘이서만 다녔을까?’ ‘그런데 하루 동안 다니기엔 너무 긴 여정이 아니었을까?’ 등등이요. 그럴 땐 그냥 넘기셔도 좋지만,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꼭 여러 번, 무엇보다 그림을 꼼꼼히 읽어주면 좀더 재미있고 풍성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김정선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내동생 김점박』 『야구공』 『숨바꼭질』 『오나, 안 오나?』가 있습니다. @the_book_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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