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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Oct 30. 2023

그럼에도, 좋은 곳에서 만나기를

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296쪽 / 16,000원 / 안온북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한 가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남은 사람들의 기억에 머문다는 것이겠지요. 어떤 죽음은 도무지 잊을 수 없을 테고, 또 어떤 죽음은 그 흔적조차 남지 않을 테며, 또 어떤 죽음은 잊고 지냈다는 게 문득 떠올라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요.


이유리 작가의 첫 단편집 『브로콜리 펀치』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다음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단편 「브로콜리 펀치」는 어느 날 눈을 뜨니 손이 브로콜리로 변한 복서의 이야기입니다. 깜짝 놀랄만한 소재를 천연덕스럽게 넘기는 작가의 솜씨에 빠져듭니다. 이상함을 그런대로 받아들인 채 이야기에 한껏 몰입하게 되지요. 그 안에 녹아있는 다정한 시선은 더없이 좋았습니다.


이번 연작소설 『좋은 곳에서 만나요』에 나오는 화자는 주로 영혼·유령·귀신 따위로 불리는 존재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있지요. 단편에 등장한 한 존재가 다음 단편의 화자가 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단편 「오리배」에서 화자(지영)가 탔던 택시의 기사님이 다음 단편 「심야의 질주」에 화자(해남)로 나오고, 「심야의 질주」에서 해남에게 뺑소니를 당한 두 인물이 다음 단편 「세상의 끝」에 주인공(혜수와 지우)이 되는 식이지요.


「오리배」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요. 지영이 택시를 타고 아버지의 납골당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속도를 높이던 택시가 빗길에 미끄러져 그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마침 오리배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지박령이 되어 오리배 선착장에 머물게 됩니다.

지영은 몇 해 전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오리배를 타던 중 엄마가 말합니다. 사실 네 아버지는 정리해고 당한 게 아니라 외도를 했었다고요. 아버지는 자살하기 전날, 외도로 생긴 아이(희재)를 거둬주면 어떻겠냐고 당신에게 이야기했다고요. 결국 희재는 함께 살게 됩니다. 엄마, 지영, 희재 세 식구가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던 가운데 지영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지요.

수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들이 오리배를 타러왔습니다. 엄마와 희재가 오리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이제 떠날 때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야기라, 산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는 이야기라, 그들의 안온함을 기도하는 이야기라 마음에 닿았습니다.


무거운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뉴스를 틀거나 포털사이트 화면을 보기 두렵습니다. 외면하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가볍고 엉뚱한 이야기로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때론 무겁고 때론 가볍게 균형을 맞추며 관심을 이어가길 바랐습니다. 이 책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제목 ‘좋은 곳에서 만나요’가 단편 곳곳에서 반복됩니다. 소설은 죽음으로 엮여있지만, 현실의 우리는 삶으로 엮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서, 일몰이 아름다워서,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이 마음에 남아서, 별일이 없어서 살만했길 바랍니다. 살아서 좋은 곳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나아가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기억 속에 좋은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억하면 그 자리는 더욱 넓어지리라 믿습니다. 10·29 참사 1주기가 됐습다. 기억 한편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이준화_오늘은책방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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