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는 그림책작가의 세계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은 1956년 쿠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쿠바 일간지의 풍자 문화가로 활동하다가 1991년에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아트 스튜디오를 열고 그림책과 일러스트, 디자인과 사진, 만화 등 다방면에 걸친 예술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후벨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오로지 그림으로만 신선하게 해석한 『로빈슨 크루소』(별천지)로 200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았고 그림책과 드로잉,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백이십 개가 넘는 상을 받았지요. 그는 쿠바를 비롯해 불가리아, 폴란드, 캐나다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알베르토 아후벨 그림전’에서 칠레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열린책들)의 표지 그림과 『로빈슨 크루소』의 그림을 전시했어요.
고향인 쿠바의 섬마을에 살 때, 터키계와 이스라엘계의 피가 섞인 그의 가족은 가난해서 책을 살 돈이 없었지만 다행히 마을엔 도서관이 있었어요. 아후벨은 책들을 열렬히 읽었는데 그중 하나가 『로빈슨 크루소』였답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모험소설이자 경영소설로 여겨지는 한편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고 비판받기도 해요. 아후벨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해요. 바다와 그와의 관계, 섬과 그와의 관계를 파고든 거지요. 그는 이 그림책이 글로부터 해방되어 무성영화의 전통을 이어받기를 원했어요. 모든 글을 떨쳐내는 데 꼬박 삼 년이 걸렸고, 마침내 가느다란 한 줄짜리 실선으로 시작해 화려한 색감이 펼쳐지는 77장의 빼어난 그림들로 새로운 로빈슨 크루소를 완성했어요.
새하얀 배경에 녹색 발 모양의 섬을 그린 표지화는 전체를 압축해요. 섬이 발 모양인 이유는 주인공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은 그뿐이라는 뜻이고, 새하얀 배경은 망망대해예요. 로빈슨 크루소가 발 하나 들이밀 수 없는 공간이지요. 이에 비해 갈매기는 자유로이 섬과 바다 위를 날고 있어요. 본문 첫 장에서는 새하얀 모래 위에 가느다란 실선이 보여요. 다음 장으로 넘겨 선을 따라가면 주인공이 모래밭에서 끌고 가는 배로 이어지지요. 모험 이전의 세상은 이렇듯 새하얀 여백일 뿐입니다. 현실에서 모험(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구멍에 빠지든, 벽장으로 들어가든 어딘가 경계를 넘어야 하지요. 그런데 아후벨은 사람의 머리와 바다를 연결해요. 생각과 상상은 머리에서 나오지요. 로빈슨 크루소의 머리에서 자라나는 긴 머리칼이 녹색과 파란색 물결들로 바뀌어 넘실대며 모험이 시작되는 거예요. 현실과 모험과의 경계를 이토록 부드럽고 멋지게 잇다니, 아후벨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예요.
쿠바의 섬사람답게 아후벨은 바다의 파도를 화려한 색감으로 묘사해요. 뾰족뾰족한 파도는 무섭도록 검푸른 색이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은 광기 어린 빨간색인데, 바다의 파도나 하늘의 폭풍 구름은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뒤엉킨 모습이지요. 폭풍우에 강타당해 허우적거리는 광경은 지옥도나 다름없어요. 로빈슨의 광기 어린 울부짖음은 신들린 듯 뒤엉킨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표현돼요. 울부짖은 뒤 자포자기 상태의 로빈슨이 날짜만 세고 있는 모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구도로 그려졌어요. 이렇게 하면 독자가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하며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에 운명에 던져진 인물의 무력함이 잘 드러나지요. 성경에 의지한 그의 무력함과 덧없는 운명을 아후벨은 특이하게 그려내요. 로빈슨은 나무 위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성경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뒤로 배가 지나가요. 예전에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애타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배가 드디어 나타나지만 성경을 읽느라 전혀 모르고 있으니, 참 역설적이지요.
또 다른 역설도 있어요. 섬 생활 28년 만에 로빈슨 크루소는 다른 인간을 만나요. 하지만 그는 흑인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지요. 만난 날이 금요일이라서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노예로 삼아요. 성경을 읽던 모습과 프라이데이에게 총을 겨눈 모습은 갸우뚱한 대조를 이뤄요. 아후벨은 서로 다른 두 모습을 통해 인간의 어이없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어요.
바다는 로빈슨을 섬에 가두었지만 로빈슨은 섬에 자신을 가두어요. 바다에 대해 열린 마음이 전혀 없지요. 아후벨은 그것을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수영 장면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지요. 섬에 자신을 스스로 가둔 로빈슨이 들어간 물은 상상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새하얀 공백이에요. 그러나 프라이데이가 들어간 물속 모습은 전혀 달라요. 물은 다채로운 색으로 그를 휘감아 돌고, 프라이데이가 쭉 뻗은 두 팔에서 물방울이 날리며 물고기들도 모여들어요. 다음 장면에서 프라이데이는 물고기들을 몰고 함께 수영하지요. 이들의 차이는 상상의 힘이에요. 바다라는 엄청난 공간에 둘러싸였지만 로빈슨은 자신을 스스로 가둔 자이고, 프라이데이는 상상할 수 있는 자인 거지요. 그래서 둘 다 물속에서 수영하지만 한 명은 새하얀 공백에 들어가 있을 뿐이고, 다른 한 명은 다채로운 색깔의 물고기들과 더불어 자신을 화려한 색으로 물들이고 있어요.
책의 내용이야 모두 아니까 그다음은 생략. 모험은 다시 구불구불 가느다란 선으로 끝나요. 처음과 끝이 반복되는 수미상관 구조지요. 상상과 모험이란 이렇게 새하얀 여백에 가는 선으로 시작해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펼치다가 다시 새하얀 여백의 가는 선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아후벨은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서남희_번역가,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9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