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이 사랑하는 책방 5 - ‘다즐링북스’
지난해에 동네책방과 인연이 깊은 책을 두 권 편집했다. 한 권은 부산에 있는 어린이·청소년책 전문 책방을 배경으로 아홉 명의 작가가 쓴 동화집이다. 참여한 작가들은 그 책방에서 책을 읽고, 책을 권하고, 강연이나 연극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함께 동화를 공부하고 동화를 쓴 것도 그 책방에서다. 다른 한 권은 스물세 군데 동네책방 대표들이 글을 쓰고 사십 년 동안 책을 발행해 온 출판인이 그림을 그린 책이다. 나는 그 책 소개글에 ‘동네책방지기들과 출판인이 함께 만든 한 권의 초대장’이라고 썼다. 가장 힘을 주어 쓴 단어는 바로 ‘초대장’이었다.
편집자가 쓴 글이, 자신이 편집한 책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만큼 빤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네책방에 대한 내 시야가 조금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네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의 세계가 투영된 책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책을 구할 수는 없더라도, 누가 책방을 지키느냐에 따라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책을 더욱 각별하게 만날 수 있다고. 말하자면 책을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의 동네책방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다. 처음 가는 동네에서는, 거기서는 또 어떤 책을 만날 수 있을까? 여행하는 마음으로 책방을 찾아갔다. 그런데 동네책방이 생긴 이유를,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많이 알게 된 뒤로는 한 줄의 마음을 더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소개할 ‘다즐링북스’는 그 마음을 더욱 북돋아 준 공간이다.
다즐링북스는 내가 사는 동네, 일하는 곳에서는 정반대나 마찬가지인 경기도 안성에 있다. 여행지도 아닌 신도시 한편의 동네책방에 처음 가게 된 건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이 두루 읽는 ‘문학’ 분야의 책을 만들면서 가장 만나기 어려운 독자는 청소년이다. 요즘 청소년의 문화를 살펴보고, 마음을 가늠하고, 그들의 일상을 연구(!)하는 것과 별개로 청소년 독자를 실제로 만나기란 참 어렵다. 청소년 대상 강연을 기획해도, 온라인 북클럽을 모집해도 모시기가 가장 어려운 독자가 청소년이다. 열심히 만든 청소년책이 분명 팔리고는 있는데, 대체 독자는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지난겨울,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책방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청소년책의 작가와 편집자가 청소년을 만나는 북토크’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곳, 다즐링북스의 홍지영 대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청소년을 책방에 오게 하기가 어렵다”고 적었다. 내가 품은 고민과 참 닮아있었다. 그 무렵 나는 사계절문학상 20주년을 보내며 ‘청소년 독자는 어디에 있는가’로 머리를 싸매던 터라 ‘청소년문학’을 화두로 제안해 오는 외부 프로그램은 대부분 참여했다. 그런데 같은 고민을 하는 분으로부터 ‘무엇이든 해보자’는 제안을 받으니, 정말 기뻤다. 더구나 동네책방이 근처 고등학교 독서동아리에 제안을 해, 청소년책을 함께 읽고, 그 책의 작가와 편집자를 만날 기회라니! 책방과 학교, 출판사가 연결되는 과정을 상상하자 마음이 벅찼다. 나는 다즐링북스의 초대에 감사히 응했다.
안성에 있는 다즐링북스는 팬데믹 한가운데인 2018년에 문을 열었다. 책방 이름에 대해 물으니 홍지영 대표는 특별한 의미가 없어서 후회가 된다면서도 덧붙였다.
“이곳에 오면 책도 차도 있다는 걸 이름만으로도 알리고 싶었어요. 좋은 책과 좋은 차가 있으면 삶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굳은 마음을 아는 홍지영 대표는 자신이 가장 오래 살았고, 가족이 사는 안성에 책방을 열었다.
겨울비가 오는 날,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신규 상가 건물 귀퉁이에 있는 동네책방으로 청소년들이 모였다. 바로 다음 날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이 과연 책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까? 하는 걱정은 이야기가 몇 바퀴 돌자 금세 사라졌다. 그날 북토크는 어른이 청소년에게 하는 일방적인 이야기 자리가 아니라, 서로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청소년을 책방에 초대한 홍지영 대표에게도 그날 모임은 모험이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친근한 공간이 되고 싶지만, 그들과의 거리감이 너무 멀어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다행히 그날의 북토크가 그간의 부담을 조금 얇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다즐링북스의 팔로워가 되어, 홍지영 대표가 또 다른 시도들을 이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책방에 오는 어른 독자가 청소년 독자들의 책모임을 응원하는 프로그램부터 어린이 독자를 위한 음악회까지.
“저는 청소년 시절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제외하면 어른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어른, 우리 가까이에서 자기 삶을 잘 살고 있는 어른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방에 자주 오는 어른 손님과 청소년 손님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상관없이 책방에서 친구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거리가 멀어 자주 가보지는 못하지만, 나는 지금도 다즐링북스를 생각하면 바로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동네책방지기가 직접 고른 청소년책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청소년은 학교 앞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고, 그 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라 어른이 되는 풍경. 내가 수많은 책방들로부터 배운 ‘동네책방이 있는 삶’은 바로 이런 것이다.
동네책방에 간다는 것은, 책과 사람을 내 삶으로 초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고맙게도, 다즐링북스가 내게 그랬듯, 많은 동네책방이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다정한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더 많은 분들이 그 초대의 기쁨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위치 : 경기도 안성시 비룡6길 13-8 보보스 1층
•운영 시간 : 수~토 12시~20시(매주 일요일 휴무 / 월, 화 예약제 운영)
•인스타그램 : @darjeeling_books
장슬기_사계절출판사 편집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