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미술관
박민경 지음 / 300쪽 / 19,800원 / 그래도봄
2015년, 우리나라에도 케테 콜비츠의 판화 작품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무채색의 판화들은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슬픔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담고 있었다. 관람객이 거의 없던 탓에 천천히 작품을 보았고 처음으로 미술관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아름다운 색도 멋진 풍경도 없었지만 그곳엔 사람들이 있었다. 고통받고 슬픈 사람들이 숨죽여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참았다. 툭 하고 눈물이 터졌다. 하지만 슬픔은 전쟁이 아니라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잊은, 혹은 인식하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며 지금 당신 곁의 사람이 괜찮은지 묻는다. 책의 말미에 실린 세계인권선언문이 선언하는 ‘모든 인간’에 관해 말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의 시작이다. 이 선언문은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는데 인류 탄생을 300만 년 전으로 본다면 얼마나 인간의 권리에 대해 무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정확히는 인간의 권리는 오랫동안 아예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모든 인간에게 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다고 상상할 수도 없었고 그런 까닭에 우리 사회는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뉘어 오랫동안 지내왔다. 당연하게도 세상은 가진 자의 시각에서 그려졌고 그들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오랫동안 드러내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혹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혹은 정말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다.
“턱이 빠져서 아파서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성냥 공장에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 그렇게 되었는데.”
“저는 노예선에서 겨우 살아났어요. 선장의 실수로 먹을 게 부족해졌거든요. 그런데 선장은 제 친구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어요. 왜냐고요? 노예들이 바다에 빠져 죽어야 보험을 처리할 수 있었거든요.”
“겨우 네 시간 동안이었어요. 폭탄이 떨어져서 제가 살던 동네의 80퍼센트가 사라졌어요. 독일군이 그러는 동안 프랑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첫 대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말이다. 아동의 노동환경에는 아무 관심도 없던 어른들은 성냥 공장에 작은 손을 가진 여자아이들을 고용했다. 소녀들은 무방비하게 노출된 백린에 중독되었다. 소녀들은 환각을 보았고 턱뼈는 괴사했다. 쓸모가 없어진 소녀는 길거리에서 성냥을 팔았다. 흔히들 안데르센의 작품 속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소설 속 소녀는 백린에 중독되어 환상을 보고 있을 뿐이다. 플로리스 아른트제니우스 역시 볼이 한껏 부어있는 화가 난 듯한 표정의 소녀를 그렸다. 목에 건 바구니에는 팔다 남은 성냥이 들어있다. 두 번째는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에서 세 번째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건넨다.
『사람이 사는 미술관』은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을 키워드로 말하지 못한 혹은 들어주지 않은 사정을 풀어놓고 있다. 당연히 금지되었고 외면되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행복하진 않다. 어떻게 같은 상황을 이처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지 싶어 화가 나는 그림들도 있다. 로마 건국 신화 중 하나인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를 두고 이를 해석한 그림들이 그렇다. 여인들이 납치당하고 강간을 당하는 게 아름다운 구경거리라도 되듯 그려낸 그림들에 화가 나고 아이의 장난 같이 보이던 피카소에게 고마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다 우리의 역사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이르면 화가 나고 아프다 왈칵 눈물이 맺힐 수 있다. 각 장은 흔히 명화라 불리는 그림들에서 시작해 우리의 역사와 맞물려 끝난다. 이야기 말미의 ‘궁금해요’ 부분을 나침반 삼아 읽어 나간다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여기나 저기나 같으면서도 아픈 역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유명한 전시나 미술관 앞에서 입장권을 들고 환하게 웃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꿈꾸던 곳에 온 오늘을 기념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그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억하고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뒤의 관람이라면 화려한 건물과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기대했을 눈 호강 대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귀가 혹사당할지도 모르니 주의 바란다. 하지만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의 이야기를 전부 들을 수는 없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듣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싶다.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불편해지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오랜 시간 그림 속에 살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그들의 이야기에 한 걸음 더 진심으로 다가선 게 아닐까? 우리 곁의 미술관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정수임_수원 산남중 교사, 『젠더 쫌 아는 10대』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아침독서>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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