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주 읽으며 다시 태어나다

책친구, 독서모임 6 - ‘생각을담는집 독서모임’

by 행복한독서

퇴사 후 집에서 매일 뒹굴뒹굴하고 있는데 아들이 말했다.


“엄마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 보내지 말고 책이라도 좀 읽어.”


그러면서 책 한 권을 건넸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였고 며칠을 읽었다. 그러나 통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이러다 책을 덮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일 것을 생각하니 창피했다. 안 되겠다 싶어 독서모임을 알아봤다. 독서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같이 읽으면 책을 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 때문이었다.


먼저 네이버에서 독서모임을 검색했다. 의외로 독서모임이 많았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50대인 내가 그들 속에 끼여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조금 어색했다. 나는 괜찮았지만 그들은 어떨까 생각되었다. 그래도 한 6개월을 빠지지 않고 꾸준히 다녔다.

젊은이들이라 주로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일주일에 평균 두세 권씩을 읽었다. 처음에는 그 책들이 나를 깨우는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하면서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발서의 끝없이 휘몰아치는 자극에 난 곧 지쳤다. 그것은 마치 계속해서 다디단 사탕을 먹는 것과 같았다.


인문학이 그리워졌다. 그러다 블로그에서 ‘생각을담는집’ 독서모임을 발견했다. 독서 목록이 내가 다니는 독서모임과 달랐다. 그러나 멀었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시골 책방. 집에서 무려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나는 일단 한 번만 참석해 보자 싶었다. 역시 가는 길은 멀었다. 월요일 아침 영동고속도로는 막혔다. 그런데 참여해 보니 좋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모두 다른 생각을 말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휘몰아쳤던 자기 계발이 아닌, 깊이 있게 나를 생각하는 책들이 나를 이끌었다. 매주 임후남 대표가 선정한 문학과 철학, 사회과학 도서 등을 읽는데, 좋은 책을 다양하게 읽는 독서의 힘을 발견했다.

동네3-독서모임1.png ⓒ생각을담는집

같이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처음 참석한 것이 2020년 4월. 한 번만 참석해야지 했던 독서모임은 2023년 10월 현재까지 3년 반 동안 매주 월요일이면 열심히 달린다. 이렇게 달려가는 또 다른 이유는 책방의 아름다운 환경과 넉넉하고 푸근한 책방 대표이자 독서모임 리더인 임후남 작가에게 빠졌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참 여러 분야의 책을 읽었다. 처음 철학 분야의 책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지루하고 계속 반복되는 정의 설명 등에 짜증도 났었다. 왜 이렇게 같은 말들을 계속 반복하지? 결국엔 편법을 써 군데군데 뛰어넘고 읽기도 했다. 그랬던 철학 분야의 책도 4년 동안 여러 번 쭉 읽다 보니 이제는 참 재미있게 읽는다. 반복되는 내용이 왜 반복되어야 하는지 알기에, 깊이 있는 반복적인 설명이 왜 필요한지 알기에 반복을 즐기며 읽는다.


명퇴 후 시간이 많아지면서 미술관 관람을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요즘 한국에도 갤러리 관람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세계적인 화가들 전시회부터 한국 유명 작가까지 전시회가 풍년이다. 전시회에 한참 흥미를 갖고 있던 시점에 생각을담는집 독서모임 목록에 건축가와 화가 관련 책들이 올라왔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북경예술견문록』 『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 『풍경의 깊이』 『에드워드 호퍼』 등 눈으로 보는 미술에서 눈으로 읽는 미술이 첨가되면서 미술을 보는 시야가 동시다발적으로 넓어졌다. 특히 강요배 작가의 『풍경의 깊이』에서는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태도와 추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배워 미술관 관람이 한층 더 즐거웠고 깊이가 생겼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푹 빠져 있을 때 안도 다다오의 인생사에 관한 책을 읽는 재미는 너무도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마음산책 출판사의 말 시리즈 또한 참 좋았다. 『긴즈버그의 말』 『뒤라스의 말』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을 임후남 대표가 독서 목록에 올려 읽었는데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읽었다. 90세 피아니스트의 어렵게 살아온 생애가 날 울렸고 80세가 넘은 나이에 연주회를 위해 하루 8시간을 연습하는 모습, 그래도 연습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깊은 존경을 느꼈다. 책에서 나오는 그 진한 여운들이 나에게도 전해져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도 깊어진다.

동네3-독서모임2.png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무척 괜찮아지고 편안해졌다.

온몸으로 처절하게 계속 읽은 책들은 더 이상 나를 아들과 갈등이 없는 엄마로 만들었고, 낮았던 자존감은 무럭무럭 솟아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당당한 나로 만들었다.

독서모임 토론에서 때로는 나와 부딪치는 말들을 들을 때도 있다. 책을 읽고 책 이야기를 하는 곳인데도 때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내가 마음이 막힌 날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런 날은 생각을담는집 푸른 소나무를 한번 돌아보면서 소나무에게 묻는다. ‘아직 책을 엄청 더 읽어야 더 나은 사람이 되겠죠?’

생각을담는집이 있어서 좋다. 책을 같이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매주 월요일 달릴 수 있어서 좋다. 생각을담는집이 내 인생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은희_생각을담는집 독서모임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동산 공화국의 흥망성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