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배움터 - 구미 ‘지니그림책연구소’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책. 가볍게 읽고 서로의 경험을 토대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체로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림책. 책방 운영 전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하던 시기 그림책은 청소년과 나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동네 주민들이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과 허물어지는 경계, 깊은 대화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2019년 3월 책방 문을 열었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꽃길만 걸으리라 생각한 난 코로나 3년을 겪으며 버텨보자를 수만 번 외치며 견뎌왔다. 지금도 애쓰는 중이다.
고등학교 앞에 책방 문을 연 건 학교 앞이라 조용하기도 했지만, 학업 스트레스로 힘든 청소년들에게 그림책이 주는 위안과 예술적 가치를 잠시 스치는 그 순간만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유아에서 초등 저학년의 그림책 수업이 주를 이루었고, 청소년과 어른까지 그림책을 읽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만드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였다.
그림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구미시 지원사업인 마을 배움터의 ‘그림책과 함께 하는 하루’ 교육 프로그램을 성인 대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림책을 읽고 제시된 키워드(경험, 질문, 실천)에 따라 이야기 나누고 일상생활 속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다짐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한다.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이야기하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좋은 질문도 할 수 있고 타인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2022년 학교 정상화를 위한 출강 수업이 주를 이루었고 어떻게 일 년을 보냈는지 잠시 숨 돌리고 나니 연말이었다. 청소년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마음을 나눈 한 해였지만 집중과 선택이 무너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 무렵 구미시 문화 도시지원센터에서 공모한 실험실에 도전해 보았고, 실험실을 준비하며 기획하고 아이디어 회의하는 모든 과정이 생동감 넘치고 활력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 여건을 생각하며 주저했던 것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는 놀고먹는 초등 책 장수들의 벼룩시장 ‘책소풍’이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로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와 부모, 또래 관계에서 겪는 대인관계 문제, 사이버불링과 같은 온라인상에서의 문제로 힘들어한다. 구미에서도 올 상반기 관내 청소년 자살 사건이 발생했으며 가정사로 치부하고 조용하게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구미시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어른인 우리가 지키자고 함께 활동하던 분들과 마음을 같이했다.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이 만나 질문과 토론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놀이를 통해 실패의 경험과 돌발 상황에 따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벼룩시장을 직접 운영하며 내재적 동기를 높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벼룩시장 운영으로 자연 순환과 경제 개념을 익힐 수 있고, 놀이 체험 부스 운영을 직접하며 진로에 대한 흥미도를 높이고 자신에게 맞는 적성을 찾을 수도 있다. 벼룩시장 운영 중 동네 공원에서 놀이 체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책소풍의 주체는 초등 책 장수이며, 놀이에 목적을 두고 있다. 소풍지기인 우리는 보조자 역할이다.
그림책 모임도 좋지만 다양한 도서를 접할 수 있는 ‘고독회’ 독서 모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싶은데 한두 줄 읽고 나면 까먹고 완독해 본 경험이 없는 초보 독서자를 위한 모임으로 ‘고품격 독서 토론회’의 줄임말이다.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책을 읽지 않아도 올 수 있는 편안한 모임이다. 처음 모임을 할 때는 완독하지 못한 미안함에 참석을 꺼려하는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주제 하나 던져주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고 뜯을 것을 알기에 그냥 참석이라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만남을 거듭할수록 한 권을 다 읽어가는 과정을 체험하는 참석자들이 생겼다. 그것이 고독회를 하는 목적이다. 한 권을 다 읽는 게 목표가 아닌 그 과정 속에 내 생각과 행동을 경험하는 것. 그래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독회가 다양한 도서를 접하는 모임이라면 ‘책 읽는 밤’은 한 권을 천천히 읽으며 깊이 있게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는 모임이다. 월 2회, 6개월 동안 밤마실 나오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책 읽는 밤은 삶의 본질을 연구한 철학 서적 중심으로 읽고 필사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책 이야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책방 프로그램을 분기별 회원과 일반 회원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매달 그림책 체험 프로그램을 공지한다. 그림책 감정 수업, 요리 수업, 놀이 수업, 진로 수업 등 요일별로 다양하게 운영 중이며 책방 공간이 참새 방앗간처럼 동네 놀이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림책방이라고 그림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책만 읽으라는 법도 없다. 책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는 문화공간이 되길 바란다.
•위치 : 경북 구미시 도봉로1길 8-21
•운영 시간 : 10시~19시 30분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연락처 : 0507-1445-9984
•인스타그램 : @jinibook2019
박윤주_지니그림책연구소 책방지기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