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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에 핀 온정의 아름다움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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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개의 꽃씨와 쥐

이조호 글·그림 / 48쪽 / 15,000원 / 사계절



마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개의 정원에 쥐가 찾아왔어요. 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쥐를 따라가 볼까요?


『백 개의 꽃씨와 쥐』는 멋진 정원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생각처럼 잘 그려지지 않던 찰나에 엄마가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셨는데, 사람이 많은 전통시장 한가운데서 “나한테 왜 이래!!!” 하는 고함이 들렸다고 해요.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거기에 쥐 한 마리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만약 쥐를 만나게 되면 다정하게 인사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얼마 뒤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바닥을 코로 열심히 들추고 있길래 가까이 가서 봤더니 쥐가 쓰러져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으악! 소리를 질러버렸습니다. 시장에서의 누군가처럼요. 그러자마자 바로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어요. 쥐에게 사과를 하고 돌아왔던 그날 이후로 정원에 쥐가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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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모습을 고민하던 어느 날 민들레의 노랑이 정말 커다랗고 눈부시게 다가왔습니다. 활짝 미소 짓는 얼굴과 강인함에 힘을 얻었고 잠시 기대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쥐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선 끝에 한 송이가 아닌 민들레의 정원이 있으면 굉장히 황홀하지 않을까. 노오란 꽃들이 산들거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어요. 민들레를 동경하는 쥐를 보면 제 마음이 많이 투영된 것 같아요. 쥐를 초대하고 민들레 정원을 떠올린 이후부터는 어렵지 않게 장면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평소 작은 종이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별로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바닥 사이즈 종이에 원화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큰 판형에 그림을 옮기는 과정이 저에게는 도전이었어요. 작은 종이에서는 조화로운 표현이 큰 화면에서는 심심해 보였기 때문에 표현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했습니다. 콜라주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가져갈 것인지, 흰 종이 위에 흰 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거듭 고민하다, 단정하고 부드럽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표현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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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쥐의 몸짓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다 보니 원하는 모양이 완성될 때까지 쥐를 여러 번 그리고, 자르고를 반복하면서 완성되지 못한 쥐의 조각들이 점점 쌓였어요. 쌓여가는 쥐들을 보면서 뿌듯함과 동시에 고단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녀석이야!’ 하는 쥐가 탄생할 때마다 소리를 질렀어요. 꽃씨 표현은 방안지를 잘라 붙였는데 방안지의 하늘색이 꽃씨의 가벼운 몸짓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종이를 보고 떠오르는 인상을 쫓아 알맞다고 생각하는 자리에 붙이게 됩니다. 종이를 잘라 붙일 때마다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분이 들었어요. 세계가 실현되는 과정을 바라볼 때 굉장히 즐거운 마음입니다.


화면 구성은 단조롭게 표현하되 이 세계의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오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화면에서 가장 먼저 보여야 하는 부분부터 시선의 흐름이 순차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을 고민했습니다. 화면을 당기고 또 멀어지게 조절하면서 장면과 어울리는 구도를 찾으려고 했고, 장면의 감정과 상태가 잘 표현되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백을 잘 활용하고 싶었어요. 여백이라서 비어 보이는 게 아닌 절제된 이미지이면서 촘촘하고 튼튼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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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군가 나를 위하는 마음을 떠올려보면 그 마음에는 뭉클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친구가 보내온 편지가 그랬습니다.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친구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여러 장의 편지를 마주했을 때 뭉클함이 찾아왔습니다. 긴 시간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준 친구의 마음을 떠올려보니 그 마음의 크기가 저에게 커다란 모양으로 닿아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쥐가 개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씨앗을 뽑고, 묶고, 끌고 가는 일련의 과정을 한 장면 한 장면 차근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과정에서 오는 감동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했어요. 저에게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이야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쥐를 따라가 보면서 장면으로 표현되지 않은 시간의 장면을 떠올려보고, 쥐는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아 보이는 것들이 결코 작지만은 않다는 사실과, 모든 곳에는 저마다의 세계가 있고 즐거운 일은 어디에나 있어서 우연히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 작은 친구가 떠올리는 고운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 마음에는 어떤 감정이 피어오를까 집중해 보고 싶었어요. 책을 펼치는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마음이 피어날지 궁금합니다.



이조호 작가는 작은 세계의 소리 없는 움직임을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자투리 종이 모으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백 개의 꽃씨와 쥐』로 제3회 사계절그림책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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