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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지는 이야기

by 행복한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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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글·그림 / 이명아 옮김 / 38쪽 / 15,000원 / 곰곰



표지 속 한 여자아이가 서있다. 소녀의 이름은 마리나.

한쪽 발은 신발을 신고, 한쪽 발은 맨발인 채로 서있다. 자신이 살던 세계 밖으로 나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도착한 소녀의 차림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에서 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거대한 벽 너머 세계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가정폭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는지, 전쟁이라는 어마어마한 두려움에서 안전한 곳으로의 도피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소녀의 상태가 평온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런 소녀를 구해주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는 두 형제.

어느 날 갑자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곱씹어본다.

손을 잡고 새로운 세계를 안내해 줄 것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 외면할 것인가?


두 형제는 모두 손을 내밀고 타인에게 공간을 나누고 가진 것을 주었지만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동생은 마리나를 믿고 새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반면, 형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이 경험한 사실만을 주장하며 자신의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형은 자기 눈으로 마리나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그제야 마리나가 했던 이야기들에 고개를 끄덕인다.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것만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잣대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형의 모습은 우리의 뇌리에 강력한 펀치를 날린다. 타인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단정 짓는 삶의 태도가 우리를 안하무인의 삶으로 이끈다는 걸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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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의 행동은 거울이 되어 삶의 관념을 비춘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무엇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지를 묻는다. 위험에 처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잃어버릴 정도의 위험을 감수했는지, 타인의 시선에 움츠러들거나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고 자신을 숨기지 않았는지, 또한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비난받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래의 자기 모습을 스스로 믿고 인정해 주었는지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 타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그리고 바닷속 무한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까지 숱한 물음표와 느낌표가 쏟아지는 책이다.


책의 첫 장을 넘기면 마주하는 깨끗하고 쾌활한 바다의 모습과는 달리, 마지막 뒷면 내지에는 플라스틱과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린 바다 장면이 우리의 시야와 마음을 답답하게 가로막는다. 국경, 장소,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나 알아야 하고 누구나 변화해야 하고 누구나 실천해야 할 환경에 대한 이슈까지 빼놓지 않고 담았다.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소재와 주제 속에서 각자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이야기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지 자유롭게 나누길 바란다.


이현정_그림책 연구자, 『그냥, 좋다는 말』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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