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의 영국 책방 이야기 3
존 레논은 ‘노동 계급의 영웅’이라는 자전적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계급사회인 영국에서 비틀즈 멤버들은 귀족이 아닌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비틀즈가 탄생한 리버풀은 맨체스터와 더불어 산업혁명이 시작된 노동자의 도시가 아닌가. 바다와 접한 리버풀은 1845년 앨버트 독에서 첫 배를 띄운 이래 80년 동안 무역항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화물선이 증기기관 열차로 대체되며 실업자가 넘치는 도시로 쇠락했다. 오랫동안 퇴물 취급을 받았던 앨버트 독은 재개발되어 지금은 해양박물관, 비틀즈 스토리 전시관, 테이트 갤러리 등이 들어서 있다. 리버플은 도시재생의 아이콘이다. 이처럼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은 퇴물이 된 산업 시설이나 건축물을 재생하는 사례가 많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도 원래는 화력발전소였다. 영국의 서점 중에도 폐쇄된 기차역, 경매장, 교회, 제분소 등이 서점이 된 사례가 많다. 디지털 변혁기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공간 감수성 아닌가.
영국 여행을 계획하고 나서야 남쪽 런던에서 북쪽 스카이섬까지 얼마나 먼지를 절감했다. 그럼에도 스코틀랜드 북쪽, 하이랜드에 가보고 싶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웨이블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세 시간이나 걸려 하이랜드의 중심지 인버네스에 도착했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요크를 거쳐 에든버러로 다시 인버네스로 올라왔더니 추웠고 바로 감기에 걸렸다. 다음 날 아침 네스 강가를 산책하지 않았다면 인버네스에 왜 왔나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네스호의 괴물이 산다는 바로 그 네스강이란 사실이 믿어지지 않게 강물에 투명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강변 벤치에 앉아 노란 수선화를 보고 있으려니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이 얼마 만인가 싶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네스 강가에 리키즈북숍(Leakey's Bookshop)이 있다. 17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게일 교회와 묘지가 있는데, 교회 건물 중 일부가 서점이 되었다. 서점 주인은 찰스 리키. 1979년 인버네스 기차역 부근에서 처음 중고 서점을 열었고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교회가 서점이 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네덜란드의 도미니카넌 서점은 원래 800년 된 고딕교회였다. 중세도시의 흔적을 간직한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에 남아있는 도미니크 수도회 건물이 2004년 서점이 되었고 건물 전체가 문화재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리키즈북숍에도 스테인드글라스나 아치형 창문 등 과거 교회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층고도 높아 1층과 2층 테라스 서가를 나선형 철제 계단으로 연결했다. 2층 테라스 서가에서 서점이 한눈에 보인다. 과거 교회 설교단도 남아있는데 그 자리에 서점 주인인 리키가 앉아 서점을 굽어보고 있다. 인버네스는 7~8월에도 최고 온도가 20도를 넘지 않는다. 당연히 난로는 필수, 서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장작 난로에서 탁탁탁 나무 태우는 소리와 냄새가 난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인 리키즈북숍은 책과 예술품, 고지도뿐 아니라 이 모든 아날로그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영국은 전통 건축물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1914년 이전 지어진 건물은 전통 건축물로 보호받을 수 있으며 전체 건축물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문화재로 등록되는 전통 건축물은 세 단계로 분류하여 관리한다. 1등급은 국가적 가치를 가진 건축물, 2등급은 지역적 가치를 가진 건축물, 3등급은 가로(街路) 환경적 가치를 가진 건축물이다. 런던의 경우 지정된 13곳에서 영국의회와 세인트폴 성당이 보여야 하는 ‘보존된 경관’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영국에는 이런 전통 건축물이 서점이 된 사례가 종종 있다. 바스에 있는 토핑앤컴퍼니는 파라곤 지역에서 14년 동안 있다가 2021년 요크 스트리트의 웅장한 조지아풍 건물로 이전했다. 이 건물은 내셔널 갤러리를 건축한 윌리엄 윌킨스가 프리메이슨홀로 사용하기 위해 1817년에 설계했다. 이후 1866년부터 퀘이커 교도가 사용했다. 현재는 2등급 문화재로 보호 중이었다. 서점이 된 후 그리스 신전 같은 이 건축물에 간판을 달아야 하는데 위원회는 건물 상단의 ‘The Friends Meeting House’라는 글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간판 없이 외부에 패널을 세워 서점임을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아한 공간이 지닌 아름다움과 그 안에 펼쳐진 책의 세계에 반한 독자들이 어둠 속 등대를 찾듯 이곳으로 몰려든다.
스코틀랜드의 애버펠디에는 오트밀을 제분하던 물레방앗간이 남아있다. 테이강이 인근이라 과거 이 지역에는 물레방앗간이 흔했다. 제분소는 1825년 지어졌고 1970년대 후반 폐쇄되었다. 이 오래된 물레방앗간이 서점이 되었다. 이름하여 워터밀북숍(Watermill Bookshop). 1등급 건축물로 지정된지라 벽을 뚫고 배수관과 케이블을 숨길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구리를 이용해 외부로 선을 빼는 차선책을 사용해 수리보수를 마무리했다. 런던에서 서점을 하다 애버펠디로 자리를 옮긴 부부는 서점뿐 아니라 카페와 갤러리까지 열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스코틀랜드의 중심 도시인 글래스고우나 에든버러에서 이곳까지 1시간 30분 정도면 올 수 있다. 나들이 삼아 오기 딱 좋은 거리에 있는 서점이다.
비슷하게 우리도 강화의 조양방직 공장이 카페가 되고, 경복궁역 근처 체부동 교회가 생활문화지원센터가 되었다. 하지만 한옥 말고 역사적 공간이 서점이 된 예는 별로 없다. 서점은 다른 상업 시설보다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책과 독자가 만나는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 현실에서 제약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책이 대접받는 공간 감수성과 역사성을 간직한 서점을 만나보고 싶다.
한미화_출판 칼럼니스트, 『동네책방 생존 탐구』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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