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나 글·그림 / 48쪽 / 23,000원 / 달그림
그림책을 받아 들자마자, 문득? 문득이라는 말 언제 사용하지? 잠깐 생각했다. 표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 너머로 가득한 노란빛이 독자를 향해 책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표지 제목의 ‘문moon득’을 보며 ‘아, 달이구나!’ 알아차렸지만, 독자는 그리 쉽게 표지를 넘기지는 못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표지의 달빛 가득과 제목 ‘문득’에서 아주 찰나 초등 2학년 겨울, 정월 대보름날 밤 마른 짚새기들을 엮어 마디마디 묶고 끝부분에 불을 붙여서 “달님 달님 절 받으소! 달님 달님 절 받으소!” 노래하며 신나게 놀았던 순간이 떠오른 거다. 그렇다. 문득은 지금이라는 현재의 시공간이 멈춰지고, 기억 속 다른 시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그런 전환의 순간이다.
표지를 넘기자 면지 가득 노랑이 두 팔 벌려 독자를 맞이한다. 그리고 속표지의 초생달이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펼쳐지는 달 그릇과 사발의 장면들! 화면의 왼편에는 달 그릇이 점점 달빛을 채워가고, 화면 오른쪽에는 오래전 기억 속 찬장 속에 있던 정다운 사발들 속으로 다양한 시공간의 기억들이 담겨진다. 냄새로, 바람으로, 흙으로, 석양 하늘로, 봄 여름 가을과 겨울이 가득 담긴 사발들이다. 왼편의 달 그릇과 오른편의 사발들은 그렇게 서로 만나고 만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엄마의 그리운 밥이 된다. 그리움 가득한 ‘노란 달밥 한술’ 나도 모르게 입에 쏘옥 넣고 꼭꼭 씹으면서 음미하게 된다.
그림책은 단순히 글과 그림의 결합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출현하고 또한 장면에서 장면으로 전환되고 이어지는 ‘구조의 변화’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장면을 넘길 때마다 같은 달빛 아래지만 다른 시공간에 있던 작가의 내밀한 기억을 조용히 드러낼 뿐 아니라, 독자들을 살포시 그 공간으로 초대하고 있다. 그릇에 담긴 서로 다른 시공간들과 그릇을 비추던 달빛, 하지만 결국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그리움의 기억이다.
국어사전을 펴니 ‘문득’의 뜻이 ‘홀연히’라고 쓰여 있다. 또 의미는 다르지만 동음이의어인 ‘문득(聞得)’(들어서 알게 되다)도 있었다. 어? 이 그림책과도 연결된다. 마지막 뒤 표지를 덮고 나서 서둘러 책꽂이에 꽂지 말고 잠깐 책에서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시라! 달그락달그락 사발들과 삼삼 고소한 노란 달 그릇이 여러분에게 나지막히 ‘그리움이 가득 찼으면 이제 다시 비워봐’ 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신혜은_그림책심리학자, 경동대 교수, 『조개맨들』 글작가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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