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기원
강인욱 지음 / 352쪽 / 20,000원 / 흐름출판
‘기원!’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말이다.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난다. 그때마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고 시작되었을까’라는 기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앙부일구 즉 오목한 해시계처럼 정확한 기록이 남은 사례도 있지만 아리송한 경우도 제법 많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답을 얻을 때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반면 그렇지 못할 때는 마치지 못한 과제처럼 개운하지 않다.
기원에 대한 관심은 박물관을 매우 좋아하거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예전 한 개그 프로에서 재미있는 상황을 설정해 “이걸 처음 말한 사람은 누굴까?”라는 말로 사람들을 웃긴 기억이 난다. 사람들과 함께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적어도 몇몇 사람은 전시된 문화유산의 기원을 묻는다. 직접 질문하지 않은 사람들도 기원이 궁금한 건 마찬가지다.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풀어나간다.
이 책은 기원을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몇몇 사람만 알고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늘 만나는 일상적인 것을 소재로 택했다. 즉 누구나 한두 번은 기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선정한 32가지 소재를 ‘잔치’ ‘놀이’ ‘명품’ ‘영원’ 등 삶을 이루는 네 가지 커다란 축으로 묶었다. 사람들의 삶 가운데 기원을 모를 수는 있어도 기원이 없는 건 없다.
책에서는 기원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저자의 직업은 발굴된 유물에 근거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고고학자다. 이 책 역시 고고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나갔다. 이 점이 이 책의 강점으로 발굴과 발굴을 통해 세상에 나온 문화유산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고고학이 이 글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 이야기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 둘이 어울려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진다. 저자는 고고학자를 ‘그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유물에 지식과 상상력을 들이부어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신선하고 생생한 이유는 이런 관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고학과 역사학이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읽어내기 어려운 이야기로 바뀌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종종 낯선 말은 만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나 문장으로 멈칫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독자가 고고학이나 역사를 깊이 있게 몰라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썼기 때문이다. 이런 글쓰기는 만만치 않아 쉽게 쓰려고 노력해도 나중에는 읽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자는 이 점을 잘 알고 일반 독자의 입장을 늘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야기는 들려주는 사람의 입에서 시작해 듣고 읽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으로 가야 하니까.
책을 읽는 동안 시간과 공간을 날아다니며 여행하는 것 같았다. 일상에서 시작된 기원 이야기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처럼 과거로 종횡무진 뻗어나간다. 출발은 분명히 작은 실마리였는데 나중에는 거대한 역사를 만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우리나라를 벗어나 동서양을 넘나든다. 막걸리와 맥주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의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유물, 중국의 허난성 자후 유적,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유적, 러시아 카프카스 지역의 마이코프 문화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여행기는 아니지만 인류 문명을 종횡으로 넘나드는 여행기처럼 다가온다.
책을 읽다 보면 시야가 넓어진다. 여러 나라를 견주어 살펴보면서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비슷한 문화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있었고 또 비슷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려준다. ‘다른 시공간에 살아도 사람들은 비슷하구나. 이런 점에서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이럴 때면 자기 생각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상대방을 평가하고 단정하려는 태도는 없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기원에서 시작하지만 기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원을 알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전개 과정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예를 들어 김치 이야기에서는 원조 논쟁에서 벗어나 절임 배추라는 키워드로 이 음식이 변화하는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며 만들어져 왔는가를 살핀다. 어쩌면 가벼운 이야기로 끝날 수 있는 주제를 묵직하고 굵직한 주제로 확장시켰다. 현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로 다시 돌아올 때는 그것이 현재 어떤 의미가 있는지 통찰력 있는 의견을 제시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처럼 저자는 끊임없이 과거 속에서 현재를 물으며 독자가 깊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유라시아 대륙과 맞닿고자 했던 고대 신라 왕족들의 열망에서부터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의 아픔, 이에 대항하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항일의식까지 화려한 외양 속에 반만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닿은 신라금관 편의 마지막 부분이다. 저자처럼 나 역시 하나의 문화유산에는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겹겹이 쌓인 역사가 담겨있으며 그 역사를 하나씩 밝히고 알아갈 때 문화유산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박찬희_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유혹하는 유물들』 저자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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