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상 속 작은 기쁨을 주는 곳, 공원은 어디에나 있다

by 행복한독서

공원의 위로

배정한 지음 / 356쪽 / 17,800원 / 김영사



코로나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일이다. 지구 멸망의 날을 앞둔 것처럼 책방 앞 골목이 텅 비었다. 손님은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게 뻔했다. 기분 전환이나 할 겸 책방 문을 닫고 가까운 용왕산근린공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산책로며 운동장이며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공원에 모여있는 듯했다.

『공원의 위로』 책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마음껏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코로나 시기에 공원에서만큼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도시인을 목격한 이야기였다. “공원이 도시의 삶에 틈과 쉼을 선물해왔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온몸으로 끄덕였다.


『공원의 위로』는 저자가 직접 두 발로 걷고 머무른 공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숲해설가로도 일하며 평소에 틈만 나면 공원으로 숲으로 향하는 나에겐 무척 반가운 책이다. 대학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조경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스스로를 ‘공원 걷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걷기는 깊은 사유의 몸짓 아니던가. 이 책이 공원 안내서를 넘어서서 공원 철학서라 할 만한 건 바로 ‘걷기의 힘’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저자가 발끝의 고통을 감내해 가며, 무더위와 혹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 시간 공원을 걷고 또 걸어서 길어낸 사유의 결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그 힘이 빛을 발한다.

선유도공원 산책

서문에서 저자는 공원을 ‘도시의 괄호’로, ‘자발적 표류의 장소’로 ‘문화발전소’로, ‘사회적 접착제’로, ‘도시의 여백’으로, ‘혼종의 경관’으로 다양하게 정의한다. 각각의 명제가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본문에서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을 통해 풀이된다. 그 속에는 역사도 있고 지리도 있고 건축도 있고 예술도 있다. ‘내가 늘 오가던 공원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었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그 공원에 다시 갔을 때, 그동안 못 보던 것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마냥 설렌다.


도시에 관한 여러 정의 가운데 ‘여백’이란 단어에서 잠시 멈추었다. 공원은 도시의 공간적인 여백인 동시에 시간적인 여백이라는 설명이다. 눈앞에 보이는 복잡한 것들을 지우고 시끄러운 소리도 음소거하니 ‘감각에 여백을 더하는 곳’이기도 하다. 채우기에 급급한 현대의 도시에 여백으로서의 공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자는 책의 말미에 다시 한번 강조한다.

통의동 브릭웰. 이방인의 입장과 시선을 환대하는 작은 숲이다. ⓒ배정한

공원에 가면 마음이 드러눕는 이유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실용과 효용의 범주에 갇혀있다. ‘쓸모’에 대한 질문과 강요가 넘쳐난다. 하지만 공원은 쓸모에서 자유롭다. 저자의 말마따나 “쓸모없는 시간을 허락하는 품위 있는 공간”이 바로 공원이다. 그러니 공원에선 하염없이 풀어지고 녹아내린다.

‘공공’의 의미를 무한히 확장하는 대목에선 나의 편협한 사고가 환기되는 경험을 했다. ‘모두를 환대하는 열린 공원’에서 ‘모두’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새에게 좋은 일을 하면 분명히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한 조경가의 말을 인용하며 “다양한 생명이 함께 거주하는 곳만큼 건강한 환경은 없다”고 덧붙인다.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공원에서 환대받아야 마땅한 주인공이라니! ‘공원의 위로’가 인간에서 전 지구 생명체로 확장된다.


저자는 “공원을 걸을 때에 풍경을 만나는 주도권이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이라며 걷기 예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더불어 ‘머무름의 중요성’에도 방점을 찍는다. 자연을 스치듯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면서 감각할 때 온전히 시간과 공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카페든 공원이든 불편한 의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에겐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저자의 말이 뭉클하다.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도시의 필요조건이라면, 여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공원은 충분조건”이라는 말을 새긴다.

동네1-공원의위로_42p.jpg 완만한 지형과 예리한 동선에 풍성한 수목이 병치된 풍경

저자에게 공원은 ‘공원’이라 이름 붙은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물 옥상의 작은 정원도, 아들과 추억을 쌓는 야구장도, 청년들의 꿈이 자라는 농장도, 대기업 사옥의 실내 정원도 모두 공원이다. ‘일상 속에서 작은 놀라움과 기쁨을 주는 장소’면 족하다. 그러니 공원은 어디에나 있다. 공원은 누구에게나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책 속의 공원으로, 나의 단골 공원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저자가 학생들과 두 발로 지도를 그리며 공원을 찾아다니는 수업을 했다고 하는데, 할 수만 있다면 그 수업에 당장 수강 신청을 하고 싶다. “글을 읽고 그 장소에 가보고 싶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면 적어도 나에겐 제대로 통했다.

커다란 지도 위에 책 속에 등장하는 공원들을 표시해 두고 한 곳 한 곳 직접 찾아가보는 꿈을 꾼다. 저자의 바람대로 크지만 먼 공원도, 작지만 가까운 공원도 더 많이 만들어져서 공원 산책자들이 무시로 위로받고 치유받기를 희망한다.


김혜정_책방 ‘꽃피는책’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닮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