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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기와 고쳐쓰기

그림책과 나 7 - 최민지

by 행복한독서

나는 이미지를 글과 그림으로 동시에 떠올리는 것이 좋다.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림으로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책의 판형이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신기했다.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림책으로 이야기하기’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재미로 다가왔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아드리앵 파를랑주의 『내가 여기에 있어』는 페이지를 연결하며 길게 이어진 뱀의 몸을 따라 나와 다른 낯선 존재를 만나러 가는 여정과 혼자 떠난 어린이가 느끼는 시간을 감각하게 한다. 내 책은 독자들의 어떤 감각을 건드릴까?

그림7-최민지 작가.jpg ⓒ최민지

그동안 출간된 내 그림책의 중심인물은 모두 어린이다. 외로운 상황에 처한 어린이가 내면의 용기로 행동하고 나아가는 이야기가 내 책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독자들이 말해주었다. 가끔 나는 작가보다 더 읽어주는 독자들을 만난다. 그런 독자를 만나면 힘이 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걸 주고 싶어진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요즘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독자가 원하는 걸 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민해 보았다. 독자가 되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림책작가는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작가 전에 독자로 살아야 한다. 그림책 독자로 있을 때 읽는 사람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중 하나인 벽타는 아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 나는 벽에 발바닥을 붙이고 침대에 가로로 누워있었다. 이대로 벽을 디디고 천장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썼던 소설의 제목은 ‘벽 타는 아이’다. 한 아이가 벽을 타고 액자 속으로 들어가 그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였다. 파일이 삭제되었던 날 나는 소리 내어 울 만큼 서러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아주 가끔씩 옛날에 썼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중력을 거슬러 벽을 디디고 서있는 인물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세 번째 그림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던 날에 나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모교가 있는 안산으로 갔다. 카페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낙서를 하고 있었다. 그때 벽 타는 아이가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그런 이야기를 썼었지, 아마 내가 소설의 형식으로 쓴 최초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다섯 글자가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단어가 이토록 오래 남아있다면 어쩌면 나에게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낡은 주머니에서 찾은 쪽지를 펼친 기분으로 생각에 잠겼다. 벽 타는 아이, 라는 제목만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 글로 썼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고 그리는 그림책의 방식으로, 다시쓰기를 해보자.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작해 보자. 이야기가 다시 발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벽 타는 아이. 제목을 적고 나니 두근거렸다. 새로운 이야기가 찾아오는 순간은 날 무척 흥분시킨다. 심지어 그게 엄청 좋을 거라는 직감이 함께 찾아올 때는….


“벽 타는 아이가 있었다.”

이렇게 문장을 적고 나니 웃거나 찡그리지 않고 정면을 보고 있는 어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문장 옆에 나란히 그 얼굴을 그렸다. 무던한 인상의 아이가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

그림7-벽타는아이2.jpg ⓒ모든요일그림책(『벽 타는 아이』)

첫 번째 더미북을 만들 때 나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고 직관에 의존하여 낙서하듯이 빠르게 그린다. 나에게 잘 맞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때로는 내가 애써서 떠올리는 이야기보다 어떤 순간에 반짝하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더 빛나기 때문이다. 『벽 타는 아이』의 첫 번째 버전 더미북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모든요일그림책 출판사와 함께 원고를 다듬어가며 나는 『벽 타는 아이』가 많은 독자를 만나기를 바라게 되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이야기가 내 편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바꾸어야 했다.


초반의 설정에 따르면 벽 타는 아이는 액자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발이 벽을 향한다. 사회에서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인물이 사실은 액자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라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결말은 아이를 가두는 이야기로 느끼게 할지도 몰랐다. 세상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결말로 읽히고 싶지 않았다. 보통 마을, 벽을 타면 성에 가두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환경을 만들자 결말이 바뀌었다. 액자가 아닌 ‘모자성’으로, 세상으로 나가는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림7-벽타는아이1.jpg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벽 타는 아이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처음에 벽 타는 아이는 나에게, 남들과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어린이였다. 나와는 아주 다른 존재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듬어가며 나는 벽 타는 아이가 우리 중 하나로 느껴졌다. 나만 남들과 다른 것처럼 느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런 마음을 겪은 적 있는 어린이와 어른이 이 책의 독자가 되어줄 것 같았다. 벽 타는 아이의 희미했던 얼굴이 선명해지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어느 날에는 벽 타는 아이가 벽을 딛고 내려다본 방의 풍경을 떠올렸고, 어느 날에는 벽 타는 아이는 내 생각보다 모자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누구인지 서서히 알아가며 내 생각을 하나씩 내려놓는 경험이었다.


책이 나왔다. 세로가 가로보다 긴 판형의 단단한 하드커버, 내 책들 중 가장 작은 크기로. 책의 제목을 바로 읽으려면 책을 회전시키거나 내 고개를 벽 타는 아이의 방향으로 기울여야 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최민지_그림책작가, 『벽 타는 아이』 저자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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